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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 - 고종( 高宗 )이 구재( 九齋 )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 놓고 면학

by 넥스루비 2007. 8. 7.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이 정자의 초창연대< 初創年代 >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高麗 > 고종< 高宗 >이 구재< 九齋 >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 놓고 면학< 勉學 >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조선시대< 朝鮮時代 > 황형< 黃衡 >이 국가에 공로< 功勞 >가 많아 조정에서 세워 하사< 下賜 >하였다 한다. 장무공< 莊武公 > 황형은 중종< 中宗 > 5년(1510) 삼포왜란< 三浦倭亂 > 때 방어사< 防禦使 >가 되어 왜적을 무찌르고 그후 도총관< 都摠管 >을 거쳐 중종 7년(1512) 함경도< 咸鏡道 >지방의 야인< 野人 >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변사< 巡邊使 >가 되어 이를 진압하였으며, 공조판서< 工曹判書 >에 이르렀다. 이곳은 한강< 漢江 >과 임진강< 臨津江 >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 西海 >로, 한 줄기는 강화해협< 江華海峽 >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부른 것이며, 높은 석주 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 英祖 > 20년(1744) 중건< 重建 >하였고, 고종< 高宗 > 28년(1891) 중수< 重修 >한 후 수차 보수< 補修 >되었다. 인조< 仁祖 > 5년(1627) 정묘호란< 丁卯胡亂 > 때에는 강화조약< 講和條約 >을 체결< 締結 >한 곳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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