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 722
본 건물<建物>은 주부<主簿> 금응석<琴應石>(조선 중종<朝鮮 中宗>(1508)∼선조<宣祖>(1583))선생<先生>의 선행<善行>을 흠모<欽慕>하여 마을 주민들이 세운 정자<亭子>이다. 종선정<種善亭>이라함은 당시<當時> 여러해를 거듭한 한발<旱魃>과 흉년<凶年>으로 인하여 향리 인근<鄕里 隣近>에 아사자<餓死者>가 속출<續出>하고 파종용 종자<播種用 種子>마저 없었을 때 선생<先生>이 기근자<飢饉者>에게는 급식<給食>을 하고 농민<農民>에게는 종자<種子>를 무상배부<無償配付>하는 등 많은 선행<善行>을 하였다 하여 퇴계<退溪> 이황선생<李滉先生>이 이 정자<亭子>를 종선정<種善亭>이라 명명<命名>하고 친필현판<親筆縣板>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정면<正面> 4칸, 측면<側面> 2칸의 일자형<一字形> 정자<亭子>인데, 경사<傾斜>진 지형관계<地形關係>로 인하여 배면<背面>에 출입<出入>하게 되어있다. 자연석<自然石> 허튼층쌓기 기단<基壇>위에 덤핑주초<柱礎>를 놓고 각주<各柱>를 세웠는데, 평면<平面>은 우측<右側>에 이통간<二通間> 온돌방을 들이고, 나머지 6칸은 모두 통간<通間> 우물마루로 꾸몄다. 배면 창호<背面 窓戶>의 문틀에는 각기<各基> 대청<大廳>의 가운데 설주흠 크기 정도<程度>의 홈이 2개씩 남아있는데, 이를 미루어보아 양측간<兩側間>의 창호<窓戶>는 각기 외짝 창호<窓戶> 3짝으로 구성<構成>되었던 것으로 추정<推定>되며 대청<大廳>과 온돌방 사이에 나있는 개구부<開口部>의 형태<形態>는 특이<特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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