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63
중종< 中宗 > 때의 학자< 學者 >며 관료인 권벌의 일기다. 권벌(1478∼1545)은 자< 字 >는 중허< 仲虛 >, 충제< 忠薺 >는 그의 호다. 중종< 中宗 > 2년 문과< 文科 >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하다가 중종< 中宗 > 14년 소위 기묘사화< 己卯士禍 >에 파면당하여 10여년간 야인으로 있다가 동< 同 >28년에 소환되어 벼슬이 우찬성< 右贊成 >에까지 올랐는데 명종< 明宗 >이 임금이 되던 해에 다시 소위 을사사화< 乙巳士禍 >를 만나서 삭주< 朔州 >에 귀양갔다가 3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뒤에 시호< 諡號 >를 충정< 忠定 >으로 내렸다. 이 책은 그의 수필일기< 手筆日記 >인데 내용이 다음과 같이 분류< 分類 >되어 있다. 한원일기< 翰苑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2년< 年 > 당후일기< 堂后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4년 정월< 正月 > ∼ 5년< 년 > 3월< 月 >] 승정시일기< 承宣時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13년< 年 >5월< 月 > ∼ 11월< 月 > 신창령추단일기< 新昌令推斷日記 > 1책< 冊 > 내용은 권벌< 權벌 >의 문집< 文集 >인 충제집< 忠齊集 >에도 실려 있으며 중종실록< 中宗實錄 >을 편찬할 때에도 자료로서 채용되었다. 이와 같이 당시 관료로서의 생활의 실태와 중앙 정부의 일상 행사가 소상히 적혀 있는 것은 임난< 壬亂 > 이후에는 승정원< 承政院 > 일기< 日記 >가 남아있어 그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선조이전< 宣祖以前 >의 것으로는 유희춘< 柳希春 >의 미암일기< 眉巖日記 >, 이이< 李珥 >의 석당일기< 石潭日記 >와 함께 귀중한 사료< 史料 >가 된다. 더구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창달한 그의 필체와 문장만으로도 매우 소중히 여겨지는 기록이다.
중종< 中宗 > 때의 학자< 學者 >며 관료인 권벌의 일기다. 권벌(1478∼1545)은 자< 字 >는 중허< 仲虛 >, 충제< 忠薺 >는 그의 호다. 중종< 中宗 > 2년 문과< 文科 >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하다가 중종< 中宗 > 14년 소위 기묘사화< 己卯士禍 >에 파면당하여 10여년간 야인으로 있다가 동< 同 >28년에 소환되어 벼슬이 우찬성< 右贊成 >에까지 올랐는데 명종< 明宗 >이 임금이 되던 해에 다시 소위 을사사화< 乙巳士禍 >를 만나서 삭주< 朔州 >에 귀양갔다가 3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뒤에 시호< 諡號 >를 충정< 忠定 >으로 내렸다. 이 책은 그의 수필일기< 手筆日記 >인데 내용이 다음과 같이 분류< 分類 >되어 있다. 한원일기< 翰苑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2년< 年 > 당후일기< 堂后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4년 정월< 正月 > ∼ 5년< 년 > 3월< 月 >] 승정시일기< 承宣時日記 > 2책< 冊 > 중종< 中宗 > 13년< 年 >5월< 月 > ∼ 11월< 月 > 신창령추단일기< 新昌令推斷日記 > 1책< 冊 > 내용은 권벌< 權벌 >의 문집< 文集 >인 충제집< 忠齊集 >에도 실려 있으며 중종실록< 中宗實錄 >을 편찬할 때에도 자료로서 채용되었다. 이와 같이 당시 관료로서의 생활의 실태와 중앙 정부의 일상 행사가 소상히 적혀 있는 것은 임난< 壬亂 > 이후에는 승정원< 承政院 > 일기< 日記 >가 남아있어 그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선조이전< 宣祖以前 >의 것으로는 유희춘< 柳希春 >의 미암일기< 眉巖日記 >, 이이< 李珥 >의 석당일기< 石潭日記 >와 함께 귀중한 사료< 史料 >가 된다. 더구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창달한 그의 필체와 문장만으로도 매우 소중히 여겨지는 기록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