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1·3리
본 건물<建物>은 해관 김진영<海觀 金建永>(1848∼1924)이 건립<建立>한 가옥<家屋>으로, 선생<先生>은 구한말<舊韓末>의 독립운동<獨立運動>가로서 삼봉<參奉>, 산릉감조관<山陵監造官>,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등을 역임하였고, 일제하의 1919년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을 전개할 때 사랑채가 지역 유림<儒林>들의 연명장소<聯名場所>로 이용되었다. 규모<規模>는 정면<正面> 6칸, 측면<側面> 6칸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자형 주택인데 안채로의 출입<出入>은 우측면<右側面>에 있는 중문<中門>으로 하게 하였다. 사랑채는 5량가<樑架>의 팔작<八作>지붕으로 되어 있는 평면<平面>은 중앙<中央>의 책방<冊房>이 퇴간<退間>을 막아 좌<左>·우<右>의 작은 사랑과 큰 사랑을 분리<分離>시켰다. 안채부분은 일자형<一字形>의 평면<平面>을 취하고 있는데, 2통간<通間>의 안방은 마당쪽으로 향<向>하도록 하여 일조<日照>에 유리<有利>하도록 하였다. 건물에는 김규영<金圭永>의 문과홍패<文科紅牌>(1885), 김건영<金建永>의 소수의망첩<疏首擬望帖> 등의 전적<典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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