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21
이원조< 李源祚 >의 《탐라지초본< 耽羅誌草本 >》, 《대정군읍지< 大靜郡邑誌 >》와 김양익< 金양翼 >의 《심재집< 心齋集 >》등 문헌에 「왕자묘< 王子墓 > 재현동사십오리< 在縣東四十五里 > 궁산양천지간< 弓山兩川之間 > 삼묘계체상존< 三墓階체尙存 > 양우유백작약< 兩隅有白芍藥 >」이라는 기록과 구전으로 전하는 내용이 왕자묘의 위치 등 근거를 밝혀 주고 있고, 2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잘 다듬어진 석재로 4~8단의 판석과 할석으로 축조된 방형석곽묘로 고려말~조선초기(13~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당 시대의 자기편과 소옥< 小玉 >, 지석좌대, 석재향료, 문인석 등이 출토되어 당 시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판단됨에 따라 제주도 묘제사 변천과정 연구에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고, 유형의 문화소산으로 향토문화 보존에 필요함이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 보존·관리에 원할함을 기하고자 한다.
이원조< 李源祚 >의 《탐라지초본< 耽羅誌草本 >》, 《대정군읍지< 大靜郡邑誌 >》와 김양익< 金양翼 >의 《심재집< 心齋集 >》등 문헌에 「왕자묘< 王子墓 > 재현동사십오리< 在縣東四十五里 > 궁산양천지간< 弓山兩川之間 > 삼묘계체상존< 三墓階체尙存 > 양우유백작약< 兩隅有白芍藥 >」이라는 기록과 구전으로 전하는 내용이 왕자묘의 위치 등 근거를 밝혀 주고 있고, 2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잘 다듬어진 석재로 4~8단의 판석과 할석으로 축조된 방형석곽묘로 고려말~조선초기(13~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당 시대의 자기편과 소옥< 小玉 >, 지석좌대, 석재향료, 문인석 등이 출토되어 당 시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판단됨에 따라 제주도 묘제사 변천과정 연구에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고, 유형의 문화소산으로 향토문화 보존에 필요함이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 보존·관리에 원할함을 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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