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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삼공신회맹록판본 - 공신(功臣) 66명이 회맹.. 하늘에 맹세를 한 후 작성한 회맹록을 목판으로 새겨 인쇄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213-5

이 자료는 1404년(태종 4) 11월 당시에 생존하고 있었던 개국< 開國 > ·정사< 定社 > ·좌명< 佐命 > 공신< 功臣 > 66명이 회맹< 會盟 >한 후 하늘에 맹세를 한 후 작성한 회맹록< 會盟錄 >을 목판< 木板 >으로 새겨 인쇄한 것이다. 이의 간행연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지질< 紙質 >의 상태로 보아 조선 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회맹록에 참여하고 있었던 민무구< 閔無咎 >(?-1410) ·민무질< 閔無疾 >(?-1410)의 형제가 1407년(태종 7) 7월 태종에 의해 숙청되면서, 같은 달 19일 공신록권< 功臣錄券 >이 박탈당하고, 4개월 후에 직첩< 職帖 >이 환수되어 폐서인< 廢庶人 > 되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 자료는 1401년(태종 1) 2월에서 1407년(태종 7) 7월 19일 사이에 인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예천군 신천서원< 新川書院 >에 소장된 필사본의 회맹록이 경북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좌명공신 1등에 책봉된 하윤< 河崙 >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었던 회맹록이 원본< 原本 >은 없어진 채『호정집< 浩亭集 >』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 세 자료를 비교해 볼 때 양식상으로 동일하지만,『호정집< 浩亭集 >』의 경우는 서압< 書押 >의 판독에 있어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자료의 주인공인 김승곽< 金承곽 >(1347-1424)은 본관은 순천< 順天 >, 초명은 을보< 乙寶 >, 호는 월담< 月潭 >이다. 그의 입사< 入仕 >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여말선초< 麗末鮮初 >의 변혁기에 무반으로 입신< 立身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생애< 生涯 > 전반기의 경력은 불분명하고 1360년(우왕 6) 흥위위별장에 임명된 이래 내외의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고서, 1396년(태조 5)에 경상도병마절제사에 임명되었고, 1400(정종 2)에 좌군도총제< 左軍都摠制 >가 되어 태종의 왕위 계승 야욕에서 빚어진 이른바 박포< 朴苞 >의 난이라고 불려지는 정쟁< 政爭 >에 참여하여 좌명공신 4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공조판서 ·지의정부사 ·판중군도총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여산군< 麗山君 > ·평양군< 平陽君 > ·평양부원군< 平陽府院君 > 등에 책봉되었다. 증직되었고 시호< 諡號 >는 양경< 襄景 >이며 상주< 尙州 >의 월담사< 月潭祠 > 및 해남< 海南 >의 춘동서원< 春洞書院 >에 제향되었다. 이 자료는 1404년(태종 4) 11월에 만들어진 삼공신 회맹록을 목판으로 인쇄한 것으로 그 시기는 1404년(태종 4)부터 1407년(태종 7) 7월 19일 사이에 인행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지질적< 紙質的 >인 측면에서도 당시의 타 자료와 비교해볼 때 유사한 면이 있다. 자료의 보존상태는 좌측하단부의 일부가 약간 훼손되었지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후대에 이의 보호를 위해 암적색 포< 布 >로 배접하여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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