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1~4리 1040
이 종은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37년(1711) 강화유수< 江華留守 > 윤지완< 尹趾完 >이 주조< 鑄造 >한 것을 그후 유수 민진원< 閔鎭遠 >이 정족산성< 鼎足山城 >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동종이다. 이 동종은 전통적인 한국종의 형태에서 벗어나 옆띠를 몸체의 중앙에 돌려 몸체를 위 아래로 구분하여 놓았고, 어깨부분은 턱이 져 있다. 그리고 어깨에서 훨씬 떨어져 꽃무늬로 장식한 독립된 4개의 유곽< 乳廓 >을 형성하고, 그 안에 연꽃으로 표현한 9개의 유두< 乳頭 >를 배치하였다. 특히 옆띠로 구분한 하반부에는 종구에 한가닥의 꽃무늬옆띠를 돌려 구연대< 口緣帶 >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이 무늬띠와 가운데 옆띠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장문< 長文 >의 명문< 銘文 >이 양각< 陽刻 >되어 있다. 이 명문에는 주종< 鑄鐘 > 관계와 개주< 改鑄 > 관계 등의 사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종< 高宗 > 3년(1866) 병인양요< 丙寅洋擾 > 때 침입한 프랑스군이 종을 약탈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다. 종각< 鐘閣 >은 260여년전에 강화성< 江華城 >의 남문< 南門 > 동쪽에 건립하였던 것을 강화국방유적< 江華國防遺蹟 > 복원정화사업< 復元淨化事業 >과 함께 현재의 장소로 옮겨 보존< 保存 >하고 있다. 총중량이 3,912kg에 높이가 198cm이고 구경< 口徑 >이 138cm에 달하여 조선시대< 朝鮮時代 > 후기 동종으로는 거종< 巨鐘 >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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