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
제석사지는 몇 개 남아있지 않은 백제사찰지로서의 중요성과 함께 문헌기록(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해 창건과 폐사연대를 알 수 있고, 무왕대에 익산천도의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왕궁평 유적과 관련된 유적으로서, '93년 실시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시굴)조사결과,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제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출토되어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유적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다. 무왕 40년(정관<貞觀>13년 서기 639년)에 벼락으로 폐사(전소)되었으나 탑 아래 심초석에 넣어 두었던 불사리와 동판금강반야경을 넣었던 칠함만이 보존되어 다시 사찰을 지어 안치하였다고 기록된다. '93년 부분발굴조사(시굴)를 실시하여 목탑지, 금당지 기단, 강당지 기단이 확인되었다. 금당지 남측기단은 동서 31.7m, 남북 23.2m로 금당지의 기단구조는 미륵사지와 같은 형태의 2중 기단으로 확인되었다. 강당지 남측기단은 동서 52.7m, 남북 18.4m로 백제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출토되었다.
제석사지는 몇 개 남아있지 않은 백제사찰지로서의 중요성과 함께 문헌기록(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해 창건과 폐사연대를 알 수 있고, 무왕대에 익산천도의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왕궁평 유적과 관련된 유적으로서, '93년 실시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시굴)조사결과,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제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출토되어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유적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다. 무왕 40년(정관<貞觀>13년 서기 639년)에 벼락으로 폐사(전소)되었으나 탑 아래 심초석에 넣어 두었던 불사리와 동판금강반야경을 넣었던 칠함만이 보존되어 다시 사찰을 지어 안치하였다고 기록된다. '93년 부분발굴조사(시굴)를 실시하여 목탑지, 금당지 기단, 강당지 기단이 확인되었다. 금당지 남측기단은 동서 31.7m, 남북 23.2m로 금당지의 기단구조는 미륵사지와 같은 형태의 2중 기단으로 확인되었다. 강당지 남측기단은 동서 52.7m, 남북 18.4m로 백제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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