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외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구전에 의하면 향교가 있던 자리는 경기전 근처이며, 경기전을 세우게 되자 주위가 번잡하다고 하여 태종 10년(1410년)에 화산동으로 이건하였다. 그 뒤 선조때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합심하여 현위치로 옮겼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이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향교의 현존 건물은 배치형태를 보면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무가 있고, 정면에 일월문 그 앞에 만화루가 있으며, 대성전 뒷담을 사이로 명륜당이 있고, 서쪽으로 장판각, 계성사, 양사재와 사마재 그리고 주위에 고직사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이곳 배향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이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으로 사성과 십철, 송대 육현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서 양무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학자 7인과 우리나라의 18현 등 총 25인을 배향하고 있다.
조선조때 관학의 성격을 띠고 있을 당시, 이 향교는 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관계로 학생수가 액내생 90명, 액외생 90명으로 총 180명에 정7품의 훈도 1명이 배속되어 학생들에게 사서 오경 등을 가르쳤다.
이곳에는 특히 계성사가 있어서, 여기에 5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계성사는 영조 17년(1741년)에 판관 송달보가 창건하고, 정랑 이기경이 상량문을 썼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년)에 부윤 심택과 판관 한진기가 중건하였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년)에 군수 권직상이 중수하였다. 또한 대성전은 융희 원년(1907년)에 당시 군수였던 이기경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건물로서 정면 3칸, 후면 2칸이다. 정면 3칸에는 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고, 지붕은 맞배 지붕이며, 양 합각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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