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동충동 464-1
남원의 축성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통일신라 신문왕 11년(691)으로 추정된다. 서은 돌과 큰바위로 쌓은 것인데 둘레가 약 3.5㎞ 높이약 5.4m 성안에는 군사용 우물이 71개소 등 수많은 군사시설이 있었고 성밖에는 성을 둘러 길이 6m의 호를 파놓고 물이 흐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헐어져 없어지고 불과 일백여m가 남아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남원성은 정유재란때 경상도로부터 침공한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 거느린 일본군을 맞아 혈전끝에 1만여명의 군,관,민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다. 또한 남원성은 1597년 정유재란시 함락된후 1692년(숙종18년)에 재축성 되었으나 동학농민 전쟁시 김개남 장군이 점령하여 운봉 민포구과 교전시 동문과 남문이 소실되고 일제때 시가지를 정리할 때 서문과 북문이 헐리어 현재는 북벽 일부가 남아사적 29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대중교통]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남원 (06:10부터 5분간격 21:40까지 )
전주역에서 11회 10:56부터 1시간-2시간 간격 03:33까지
남원시내권에 위치 교통이용 편리(택시이용)
남원의 축성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통일신라 신문왕 11년(691)으로 추정된다. 서은 돌과 큰바위로 쌓은 것인데 둘레가 약 3.5㎞ 높이약 5.4m 성안에는 군사용 우물이 71개소 등 수많은 군사시설이 있었고 성밖에는 성을 둘러 길이 6m의 호를 파놓고 물이 흐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헐어져 없어지고 불과 일백여m가 남아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남원성은 정유재란때 경상도로부터 침공한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 거느린 일본군을 맞아 혈전끝에 1만여명의 군,관,민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다. 또한 남원성은 1597년 정유재란시 함락된후 1692년(숙종18년)에 재축성 되었으나 동학농민 전쟁시 김개남 장군이 점령하여 운봉 민포구과 교전시 동문과 남문이 소실되고 일제때 시가지를 정리할 때 서문과 북문이 헐리어 현재는 북벽 일부가 남아사적 29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대중교통]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남원 (06:10부터 5분간격 21:40까지 )
전주역에서 11회 10:56부터 1시간-2시간 간격 03:33까지
남원시내권에 위치 교통이용 편리(택시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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