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암 김구비 - 김구 선생이 남해에 유배당했던 것을 추념하는 비석

by 넥스루비 2007. 8. 7.

높이 약 2m, 넓이 90m, 두께 25㎝.
설천면 노량리 충렬사 옛길 입구. 왼쪽 높은 기단위에 서 있는 조선 중종때의 문신 자암 김구(自庵 金絿)선생의 남해 적려유허비.
자암 김구 선생이 남해에 유배당했던 것을 추념하는 비석이다.

그는 남해 노량에서 13년이란 긴 세월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해찬가'라 할 수 있는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지었다.
김구가 남해로 유배되어 갔을 때 그곳의 뛰어난 경치와 향촌의 인물들과 어울려 풍퓨를 즐기던 정서와 감회를 노래한 경기체가이다.

그는 조선시대 전기의 3대 서예가(安平大君瑢, 楊士産, 韓濩, 金絿)중의 한 사람이며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이던 김구 선생의 유허비로 바로 그 자리가 선생의 적소(謫所)이며 서원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자암유허추모비는 숙종30년(1704)에 김구의 6대 후손인 김만화가 남해 현령으로 부임하여 김구가 생활하였던 옛터에 세운 것이다.
김만화는 죽림서원을 세워 조상의 얼을 받들기 위해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모셨으나 죽림서원은 고종 원년(1864)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