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조선 현종원년(1660)에 백월당 학섬대사가 용문사를 현 위치에 정하고 선당양당(禪堂兩堂)을 현종 2년(1661)에 준공하였다.
6년 후인 현종 5년(1666)에 일향스님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지해스님은 단청을 맡았다고 <용문사 창건기>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 있는 대웅전은 숙종29년(1703)에 성화스님이 낡은 대웅전을 고쳐 새롭게 지은 것이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계미년(숙종 29, 1703)에는 성화와 의형에 의해 중창하고 찬엄이 단청하였다.
을묘년(영조 11, 1735) 계행이 다시 중창, 을묘년으로부터 39년이 지난 계사년(영조 49, 1773)에 환성과 등준이 다시 중창한 것을 3년이 지난 을미년(영조 51, 1775) 등준에 의해 단청을 마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내외 3출목 5량가구이며 팔작지붕이다.
이중부연으로 장엄하고 무게가 있다.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뒤쪽으로 불단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 머리 위에는 엄숙하게 보이도록 관이 만들어져 있다.
대웅전에는 사찰이름에 걸맞게 용머리 조각이 많이 있어 웅장하고 화려함을 느낄수 있다.
임진왜란의 수난을 겪으면서 승려들이 총궐기하여 의승군(義僧軍)을 일으켜 용감하게 싸웠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으며 이것은 경내 보존중인 삼혈포(三穴砲)에서 더욱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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