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배동 남산 자락에 있었던 사찰로 남산에 있는 많은 절터 가운데 이름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남산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탑이 있어서 유명한 유적지이다. 해목령과 남산성을 배경으로 하고 두 지맥이 조용히 둘러 막은 가운데 덩실하게 솟은 언덕 위에 창림사가 자리잡고 있다.
창림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단지 김생(金生 711-? 통일신라시대 서예가)이 썼다는 「창림사비(昌林寺碑)」가 있었다 하나 원비는 물론 탁본조차 전하지 않는다. 그 뒤의 역사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사지(寺址)가 상, 중, 하 3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흩어진 초석들로 미루어 보아 대사찰(大寺刹)이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창림사는 「삼국유사」에서 신라건국기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알영부인(閼英夫人)이 13세 되던 해까지 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삼층석탑과 쌍두귀부(雙頭龜趺), 석등연대(石燈蓮臺) 등이 남아있다. 서쪽 정면에 높이 6m, 남북길이 45m 되는 토대(土臺)가 있는데 원래는 돌축대였고 오르내리는 계단도 여러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동쪽에 높이 2m가 되는 돌 축대가 있다. 축대 위에는 가로 36m 세로 36m 넓이의 터가 있는데 이곳을 금당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 당시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아래터 남쪽에 머리가 없는 쌍두귀부가 있다. 창림사터에서는 삼층석탑과 쌍두귀부 외에 탑지석 1매, 비로자나불상 2구, 법화경석(法華經石) 다수, 명문와(名文瓦) 등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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