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12교구 본산인 해인사의 말사.벽송사는 조선 중종 경진년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며, 보물제474호로 지정된 벽송사 3층석탑이 있는 수도 도량으로서 전통사찰 제 12호로 지정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의 산 충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6.25 전란을 전후하여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정심에 법맥을 이어 조선 태고종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 등 60여명에게 선(禪)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다. 다만 현 절위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조선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1520년(중종15)에는 벽송(碧松)선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ㆍ25때 보광전(普光殿)과 방장선원(方丈禪院)을 제외한 사우 모두가 불타버린 것을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강원도 설치하고 있다.
창건설화로, 조선조에 불어닥친 불교탄압으로 선승들이 수난을 당할 때 조계종 제4조(祖)인 벽계 정심선사(碧溪 淨心禪師)는 화를 피해 이 골짜기 광점동(筐店洞)에 은거하여 변복에 머리 기르고 공양보살을 부인으로 위장하여 싸리를 꺾어 삼태기를 만들어 팔면서 때를 기다린다. 어느날 찾아온 젊은이가 크게 깨우쳐 법맥을 이으니 이가 곧 벽송(碧松) 지엄선사(智儼禪師)이다.
벽송사의 법맥은 벽계-벽송-부용으로 이어진다.
해방후 토지개혁전까지만 해도 농지수입이 많아 강원생 가운데 뛰어난 스님을 유학시킬 정도의 부찰이었으나 공비토벌때는 공산패잔병들의 병원으로 쓰이는 불운도 겪었다.
사내엔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벽송선사 진영, 경암 관식스님 어록목판(=경암문집)45장 중 42장이 보존되고 있다.
[승용차]
함양->인월->마천->벽송사(36km)
함양->유림->휴천->마천->벽송사(3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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