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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비 - 박창(朴暢)의 비석, 이공미(李公 美)이 비석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양산시 중부동 153-3번지

효자비(孝子碑)

양산시 교육청 앞의 잔디밭에 2기의 효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고려 우왕때에 진사(進士)를 지낸 박창(朴暢)의 효행에 관한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이공미(李公 美)라는 사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먼저 박창(朴暢)의 비석은 그 형태가 방형으로 2cm 가량의 음각선을 둘러 장식하였다. 측면에는 "효자리(孝子里)"라고 큰 글씨로 음각하였고 그 아래에 박창(朴暢)의 효행에 대한 기록을 하였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나 다행히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효자 고려조(孝子高麗
條)>에 의하여 박창의 행실을 알 수 있다. "박창 조기부상여우심곡 일야애통 왜적삼인 지도내문 창답이실 적감석지 정문입비(朴暢遭基父喪廬于深谷 日夜哀痛倭賊二人持刀來問 暢答以實賊感釋之旌門立碑)"라는 원문에 의해서 박창이 부친상를 당하여 초막을 짓고 애통해 하는데 두 명의 왜적이 칼을 가지고 왔다가 박창의 애통해 하는 사연을 듣고 감동하였으며, 이로서 정문(旌門)을 세운 사실을 적고 있다. 또 이공미(李公美)의 비는 박창의 비와는 달리 비의 모서리 부분을 5cm 가량 깎아서 모를 죽인 형태이다. 측면에는 "효자지리(孝子里)"라는 2단으로 글씨를 새겼다. 박창의 비와 같이 작은 글씨로 아랫 부분에 음각하고 있으나 이것도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앞서 말한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효자 고려조(孝子高麗條)>에 "이공미 수모묘삼년 정문복 호(李公美守母墓三年旌門復戶)"라고 기술한 점으로 보아서 이공미라는 사람 역시 모친상을 당하고 3년 동안 어머니의 무덤을 지켰고 이를 기리기 위해서 비를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 참고문헌 : 경상남도, 1995, <<경남문화재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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