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신기동 20
양산 신기리 산성(성황산성)[梁山新基里山城(城隍山城)]
양산시의 동북쪽에 있는 성황산(城隍山) 정상부위에 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의 이름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산천조(梁山郡 山川條)>에 "성황산 재부 동북오리 진산(城隍山在郡東北五里鎭山)"이라 기록하였는데 군성(郡城)에서 기준한 방위와 거리를 고려해 볼 때 현재 산성이 남아 있는 이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성황산의 남봉 남측에 있는 성황사(城隍詞)에서 기인된 명칭으로 생각된다. 또한 <성곽조(城郭條)>에는 "성황산성 석축주사천삼백육십팔척 고육척 내유정육 지이 유군창(城隍山城石築周四千三百六十八尺高六尺內有井六池二有軍倉)"이라 하였다. 따라서 현재 신기동 산성 (新基洞山城)이라 부르고 있는 이 성은 그 명칭을 성황산성(城隍山城)으로 불러야 옳다고 본다. 주민들은 이 성이 있는 곳을 '산성만딩이', '산성비알'로 부르고 있다. 성재의 지형은 남·북봉을 중심으로 가운데가 평탄한 대지상이며 그 외곽으로는 급한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정상부 외곽의 자연지형을 따라 축조되어 있어 성의 평면형은 타원형상에 가깝다. 성의 서쪽으로는 남쪽의 낙동강(洛東江)에 유입되는 양산천(梁山川)과 그 연변에 다소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에는 서쪽의 양산천에 유입되는 북부천(北部川)을 사이에 두고 동산성(東山城)과 대치해 있다. 이러한 성의 입지와 주변 지형과의 관계는 유적의 형성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인데 이로 볼 때 이 성은 남해안(南海岸)에서 낙동강(洛東江), 양산천(梁山川)을 거쳐 북상하는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성곽의 축조는 성황산 주변에서 쉽게 구해지는 안산암 계통의 자연석을 치석하여 장방형으로 뉘어 쌓고 틈새는 작은 할석으로 메꾸었다. 체성(體城)의 기저부는 약 0.3-0.5m 정도 돌출되게 내어 쌓았는데 그 높이는 3-5단 정도이다. 체성의 구축은 정상부의 외곽을 따라 아래쪽은 편축하고 상단부는 협축하였으나 윗쪽은 붕괴되어 원성벽의 높이는 알 수 없다. 현재 잔존 성벽의 최대 높이는 약 2m 정도이다. 성곽의 초축 연대는 성의 내부와 그 주변에서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창원대학교박물관·양산시, 1996, <<양산시문화유적정밀지표조사보고>>
양산 신기리 산성(성황산성)[梁山新基里山城(城隍山城)]
양산시의 동북쪽에 있는 성황산(城隍山) 정상부위에 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의 이름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산천조(梁山郡 山川條)>에 "성황산 재부 동북오리 진산(城隍山在郡東北五里鎭山)"이라 기록하였는데 군성(郡城)에서 기준한 방위와 거리를 고려해 볼 때 현재 산성이 남아 있는 이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성황산의 남봉 남측에 있는 성황사(城隍詞)에서 기인된 명칭으로 생각된다. 또한 <성곽조(城郭條)>에는 "성황산성 석축주사천삼백육십팔척 고육척 내유정육 지이 유군창(城隍山城石築周四千三百六十八尺高六尺內有井六池二有軍倉)"이라 하였다. 따라서 현재 신기동 산성 (新基洞山城)이라 부르고 있는 이 성은 그 명칭을 성황산성(城隍山城)으로 불러야 옳다고 본다. 주민들은 이 성이 있는 곳을 '산성만딩이', '산성비알'로 부르고 있다. 성재의 지형은 남·북봉을 중심으로 가운데가 평탄한 대지상이며 그 외곽으로는 급한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정상부 외곽의 자연지형을 따라 축조되어 있어 성의 평면형은 타원형상에 가깝다. 성의 서쪽으로는 남쪽의 낙동강(洛東江)에 유입되는 양산천(梁山川)과 그 연변에 다소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에는 서쪽의 양산천에 유입되는 북부천(北部川)을 사이에 두고 동산성(東山城)과 대치해 있다. 이러한 성의 입지와 주변 지형과의 관계는 유적의 형성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인데 이로 볼 때 이 성은 남해안(南海岸)에서 낙동강(洛東江), 양산천(梁山川)을 거쳐 북상하는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성곽의 축조는 성황산 주변에서 쉽게 구해지는 안산암 계통의 자연석을 치석하여 장방형으로 뉘어 쌓고 틈새는 작은 할석으로 메꾸었다. 체성(體城)의 기저부는 약 0.3-0.5m 정도 돌출되게 내어 쌓았는데 그 높이는 3-5단 정도이다. 체성의 구축은 정상부의 외곽을 따라 아래쪽은 편축하고 상단부는 협축하였으나 윗쪽은 붕괴되어 원성벽의 높이는 알 수 없다. 현재 잔존 성벽의 최대 높이는 약 2m 정도이다. 성곽의 초축 연대는 성의 내부와 그 주변에서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창원대학교박물관·양산시, 1996, <<양산시문화유적정밀지표조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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