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667번지
척화비는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고종 8년(1871)의 신미양요(辛未洋擾)를 물리치고 쇄국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고취하고자 세운 비로서 국내 여러 곳에 현존한다. 이 비는 일반 비석처럼 귀부(龜趺)와 이수(首)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척화비와 마찬가지로 통비(通碑) 형태이다. 전면에 굵은 글씨로 2행 12자를 음각하고 있다. 원문은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洋夷 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라고 하였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계아만년자손병인작신미입(戒我萬年子孫丙寅作辛未立)"이라고 음각 하였다. 척화비는 대원군(大院君)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국민에게 외세 침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전국 각처에 세웠는데 높이나 폭 등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형태는 거의 동일하다. 원래는 전국 각지에 있었으나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개항을 하게 되자 대부분 철거되거나 매몰되었다.
- 참고문헌 : 경상남도, 1995, <<경남문화재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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