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백제의 거열성이었던 진주는 신라가 점령하여 주를 두었고 통일신라때는 강주로 불렀다. <동국여지승람> 진주목 성곽조에 '촉석성은 주의 남쪽 1리에 있고 석성으로 둘레가 4,359척, 높이 15척으로 성내에 우물이 셋, 군창이 있다'고 하였다.
동남으로 남강이 흐르는 곳에 돌출된 야산구릉으로 북서쪽은 창호를 남강과 연결시켜 천혜의 요새지인 진주성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 광해 10년(1618)에 둘레 4km, 내성 둘레 600m가 완성된 듯하다. 지금의 성곽은 1970년부터 4년간의 재건공사로 옛모습을 되찾게 한 것이다.
진주성은 임진왜란때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거두었던 성이며, 또한 6만여 민, 관, 군이 왜구에게 항전하다가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때 논개(?∼1592)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성의 서쪽은 의정문, 북쪽은 지제문, 남쪽은 예화문이라 불렀다. 성문 위에는 누각이 있어 누각 위에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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