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문화동 62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는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치적(治績)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事蹟碑)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는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박홍미(朴弘美)가 지은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慧眼)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 바닷가 큰 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광무 8년(1904) 이곳 사람 이학재(李鶴在), 이승주(李承周) 두 사람이 세병관 앞뜰에 옮겨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귀부(龜趺)가 없어진 듯 비신(碑身)의 아랫부분을 땅에 묻어 오랫동안 비문의 완전한 판독이 어려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조형미가 특히 뛰어나다.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는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치적(治績)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事蹟碑)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는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박홍미(朴弘美)가 지은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慧眼)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 바닷가 큰 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광무 8년(1904) 이곳 사람 이학재(李鶴在), 이승주(李承周) 두 사람이 세병관 앞뜰에 옮겨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귀부(龜趺)가 없어진 듯 비신(碑身)의 아랫부분을 땅에 묻어 오랫동안 비문의 완전한 판독이 어려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조형미가 특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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