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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장 - 집안에서 쓰이는 각종 가구를 제작하는 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통영시 무전동 377-1

소목장(小木匠)이란 장롱과 궤함 등을 비롯하여 문방구등의 세간들과 때로는 각종 목물(木物) 즉 가마, 수레, 농기기, 기타 도구류를 포함하여 건축상으로는 대목(大木)에 대칭되는 용어로 쓰인다. 대목이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과 같은 큰 목조건물을 짓는 목수를 이르는 말인데 그에 반해서, 소목은 장농, 사방탁자, 서안, 연상, 소반 등과 같이 작은 가구를 만드는 목수를 말한다

건축상 소목의 구실은 창호와 난간, 닫집등 건물에 부착되는 시설물의 제작을 말한다.
통영은 나전칠기를 비롯하여 입자, 금속공예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승공예가 밀집 전승되어 오던 고장으로서 소목장(小木匠)이 매우 많은 곳이다.

고대에는 목수를 재인(梓人), 재장(梓匠), 윤여(輪與)라 했으며 이는 수레에서 생긴 중국식 명칭이다. 신라에서는 재장이 속해있는 관서를 마전(磨典)이라 했고, 대목에 해당하는 목척(木尺)은 별도의 전읍서(典邑署)에 속하였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때부터 나타나며 조각장, 나전장과 더불어 중상서(中尙署)에 예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서는 일괄해서 목장(木匠)이라 하였는데 그 대신 세분화한 수레장(車匠), 선장(船匠), 통장(桶匠), 표통장(表筒匠), 마조장(磨造匠), 풍물장(風物匠), 안자장(鞍子匠), 목소장(木梳匠), 목영장(木瓔匠)을 따로 두었음이 경공장의 전문 직종으로 명시되어 있다.

소목장의 기능은 목가구의 제작과 건축상의 소목일을 포괄하고 있다.
조선초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의 소용으로 제작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고 종류도 잡다해져서 지역적인 특성이 현저히 나타나게 되었다.
더구나 지방에서는 목수를 조치해서 필요한 기물을 제작하는 자급자족 형태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목가구는 일정한 규격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반면 건축의 소목일이 급격히 줄어든 최근세 이후에는 수레나 가구의 제작에까지 자연히 확대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실이나 상류계층의 가구는 옻칠과 밀다회(密陀會), 자개, 대모(玳瑁) 등 좋은 치레 방법이 구사되었지만 서민사회는 제약이 많았다. 특히 선비들이 문방구의 과다한 겉치레를 기피하는 풍조로 말미암아 나무 자체의 재질을 살리려는 생각이 뚜렷하게 격조를 이루어냈다. 남도(南道) 가구가 문목(紋木)을 귀하게 여기는 점이라든가, 문목판의 가장자리에다 회장(回裝) 기법으로 뇌문을 돌리는 섬세한 솜씨도 모두 그에 연유한다.

소목장의 종류로서 장과 농은 신분에 따라 그 문양 설계가 달라지며 장과 농 이외에도 함(函), 탁자, 상(床), 갑(匣), 서민들의 반닫이, 뒤주, 곡갑, 돈궤 등 수많은 종류를 보면 연(輦), 가마, 사인교, 초헌, 촛대, 등경걸이, 신주(神主), 초상화갑(肖像畵匣), 관(棺), 제상(祭床), 교의(校椅), 족대(足臺), 반(盤), 가(架), 목발(木鉢), 목대접(木大接), 목접시(木血), 잔(盞), 제기(祭器) 등이 있다.

같은 종류라도 지방에 따라 특색이 다르다. 예를 들면 소반에도 통영반(統營盤), 나주반(羅州盤), 해주반(海州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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