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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관문 - 조선시대에 축성한 제1,2,3 관문과 부속성벽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

조령에는 조선시대에 축성한 제1,2,3 관문과 부속성벽으로 된 문경관문(關門)이 있다.
관문들은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위시설을 축조하기 위하여 현지 실측이 시행되었다.
1594년(선조 27) 영의정 유성룡이 충주 수문장 신충원의 조령지세와 설관 및 파수계획을 듣고 상주하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선조의 윤허를 받아 충주사람 신충원이 설관(設關)하여 1594년에 이루어 놓은 첫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에 크게 증축되어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이다.

숙종때(34년, 1708) 제2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에 남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主屹城(주흘산))이라 하였다.
주흘관은 1890년대에 다시 주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홍예문(무지개문, 출입문)은 높이가 4.5m, 폭 3.4m이고 좌우의 석성(石城)은 높이 3.6m, 폭 3.4m, 길이 188m이며, 부속산성은 동쪽 길이 500m, 서쪽 400m로 3개의 관문 중에 가장 옛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성벽 좌우에는 성벽의 개축년대와 시공자의 성명과 직책이 음각되어 있어 성벽 보수의 연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숙종때(같은 해) 북적(北敵)을 막기 위해 새재 마루턱에 산성을 쌓고 중창한 것을 1907년 일제에 의해 육축(肉築)만 남겨놓은 채 불타버린 것을 1977년 복원하였으니 이른바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이다.
조령관 문루에 올라보면 소백산맥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루며 조령관 용마루를 타고 서남쪽으로 달린다. 조령관 지붕위에 떨어진 빗물은 남쪽은 낙동강물이 되고 북쪽은 남한강으로 유입되어 용마루는 분수령이며 도계이기도 하다.

이들 제 1,2,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 즉 서편의 마폐산, 조령산을 연결하는 산릉(山稜)과 동편의 부봉(釜峰), 주흘산(主屹山)을 연결하는 능선사이의 조령천 계곡에 위치하여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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