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
이것은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의 명재상< 名宰相 > 황희< 黃喜 >(1363∼1452) 정승< 政丞 >의 유물로서, 옥서진< 玉書鎭 > 1쌍, 산호갓끈< 珊瑚纓 > 1종, 옥연< 玉硯 > 1개, 서각대< 犀角帶 > 1개, 분재문서< 分財文書 > 1매 등 5점이다. 특히 분재문서에는 연산군< 燕山君 > 6년(1500) 9월에 재주< 財主 >인 황정< 黃珽 >이 아들 사웅< 士雄 >에게 전답< 田畓 >을 특별히 별급< 別給 >하고, 증조< 曾祖 >가 손수 사용하던 물건인 산호갓끈, 옥연, 구< 鉤 > 등의 몇 가지 보물< 寶物 >을 종가< 宗家 >에서 간직하여 삼가 지킬 것을 밝혔다. 황희의 자< 字 >는 구부< 懼夫 >, 호< 號 >는 방촌< 村 >, 본관< 本貫 >은 장수< 長水 >로 황군서< 黃君瑞 >의 아들이며, 개성< 開城 >에서 출생하였다. 27세에 고려조< 高麗朝 >에서 문과< 文科 >에 급제하여 이듬해 성균관학관< 成均館學官 >이 되었다. 조선조< 朝鮮朝 >에 들어와 육조< 六曹 >의 판서< 判書 >, 대사헌< 大司憲 >, 지의정< 知議政 >, 참찬< 參贊 >, 평안도도순문사< 平安道都巡問使 >, 판부사< 判府事 > 등을 지내고 세종< 世宗 > 113년(1431)에 영의정< 領議政 >이 되어 18년간 세종을 도와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시호< 諡號 >는 익성< 翼成 >이다. 황희는 평소 인자< 仁慈 >하고 깨끗한 관직생활< 官職生活 >을 한 것으로 청백리< 淸白吏 >의 귀감이 되었다. 저서< 著書 >로는 『방촌집< 村集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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