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산 5
이 비는 문신< 文臣 >으로 충간< 忠諫 >과 절의< 節義 >를 다한 충신 홍귀달 선생의 신도비로 글은 남곤< 南袞 >이 짓고, 글씨는 아들 홍언국< 洪彦國 >이 써서 중종< 中宗 > 30년(1535)에 세운 것이다. 선생의 자< 字 >는 겸선< 兼善 >, 호< 號 >는 허백당< 虛白堂 >으로 세종< 世宗 > 20년(1438)에 양적리< 羊蹟里 >에서 태어나서 세조< 世祖 > 6년(1460) 강릉별시문과< 江陵別試文科 >에 을과< 乙科 >로 급제하여 세조 12년(1466)에 세자시< 世子侍 > 설서< 設書 >로서 선전관< 宣傳官 >에 임명되었고, 세조 13년(1467) 이시애< 李施愛 >의 난< 亂 > 때 공을 세워 이조정랑< 吏曹正朗 >에 승진되었다. 그후 춘추관< 春秋館 > 편수관< 編修官 >으로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성종< 成宗 > 12년(1481)에 천추사< 千秋使 >로 명< 明 >나라에 다녀온 후 충청도< 忠淸道 > 관찰사< 觀察使 >, 형조참판< 刑曹參判 >, 대사성< 大司成 >을 거쳐 호조판서< 戶曹判書 >를 지냈으며, 연산군< 燕山君 > 4년(1498) 무오사화< 戊午士禍 > 때 10여 조< 條 >에 달하는 왕의 난정< 亂政 >을 간하다가 좌천되었고, 연산군 10년(1504)에 경원< 慶源 >으로 유배< 流配 > 도중 단천< 端川 >에서 교살< 絞殺 >되었다. 그후 중종반정< 中宗反正 >으로 복관< 復官 >되었으며, 숙종< 肅宗 > 때 문광< 文匡 >의 시호< 諡號 >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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