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3가 743-148
강동일의 예명<藝名>은 동완<東完>으로서 1928년 완주군 삼례읍 하리 603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방금선의 형부 임성옥<林性玉>으로부터 거문고 풍류 사사를 시작으로 하여 당시 거문고의 여류명인 방금선<方錦仙>을 찾아가 거문고 산조를 배웠다. 툭하면서도 맑은 소리를 내는 거문고에 빠진 그는 왼손가락이 부르튼다거나 오른손가락에 공이가 박히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으며, 느린 가락에서 빠른 가락까지, 진양조에서 중모리, 엇모리, 중중모리, 반굿거리, 단모리로 이어지는 6장단을 익혀 갔다. 32세 때 성금연<成錦鳶>으로 부터 가야금 산조를 사사하였는가 하면, 그 뒤 조금앵국악원에서 3년간, 임춘앵국극단에서 10년간, 김진진<金眞眞>일행에게서 3년, 박미숙<朴美淑>단체에서 1년 등 창극 반주를 맡았다. 1960년에는 김윤덕으로 부터 가야금을 익혔고, 1963년에는 아쟁에 손을 대 단독 수련을 했다. 1965년부터 3년간은 전주국악원 강사로, 1974년부터 76년까지는 비사벌예술학교 강사를 재임한 후 1978년에 거문고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차하로 입상했고, 1979년에는 차상을 차지했다. 이어 1980년에는 기악부 장원을 차지하여 명인 칭호를 받았으며, 1984년에는 제20회 신라문화재 전국국악경연대회에도 출전하여 현악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장기<長技>는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점점 몰아가며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를 섞고, 느긋한 리듬과 촉급한 리듬을 교유시켜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출하는데 능란한 기교를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거문고뿐만 아니라, 가야금·아쟁 등에도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거문고 산조의 모든 가락을 모아 새로 전바탕을 구성하고, 이것을 자신이 고안한 악보로 채보<採譜>를 해낸 큰 업적을 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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