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법화경< 法華經 >은 우리나라 불전< 佛典 > 개판사상< 開版史上 > 가장 많이 개판되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전< 經典 >이다. 법화경< 法華經 > 28품은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1세기경 낭본불교< 낭本佛敎> 본연의 모습이 사라져 교단이 침체되었을 때 부파불교< 部派佛敎 > 중에서 이를 반성하여 석가< 釋迦 > 재세시< 在世時 >의 상태로 복귀하려는 혁신운동이 일어났으니 곧 대승불교운동< 大乘佛敎運動 >이다. 이들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출가 비구가 중심이 되어 결집한 옥함경전< 阿含經典 >에 만족할 수 없었으므로 소의경전< 所依經典 >으로 결집한 것이 법화경< 法華經 >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3세기 중엽 오< 吳 >의 지겸< 支謙 >이 법화경< 法華經 > 제2권 비유품< 譬踰品 >을「불이삼사환경< 佛以三事喚經 >」으로 번역하였으니 이것이 초역< 初譯 >이다. 이후 부분역과 완역을 합해 16차 번역되는데 그중 완역은 6차례 이루어졌다. 이중 법호< 法護 > 역< 譯 >의「정법화경< 正法華經 >」10권(286년), 구마나십< 鳩摩羅什 > 역< 譯 >의「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7권(406년), 개나굴다< 개那굴多 >와 달마급다< 達摩급多 >가 번역한「첨품묘법연화경< 添品妙法蓮華經 >」7권(601년) 3종이 전래되고 있다.「첨품묘법연화경< 添品妙法蓮華經 >」은 앞의 2종을 비교하여 빠진 부분을 보완하여 번역한 것이다. 법화경< 法華經 >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5세기경 신라 법흥왕< 法興王 > 시대이다. 기록상 최고의 간행본은 고려 현종년간(1020-1022) 현북사< 玄北寺 >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후 고려에는 많은 사찰판이 간행된다. 3역본< 譯本 > 모두「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에 편입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3역본< 譯本 >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송< 宋 >의 계환< 戒環 >의 요해< 要解 >가 있는「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이 주로 통행되었고 2역본은 비교연구 자료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의 독자적인 판은 태종년간에 성달생< 成達生 >의 필사를 등재본< 登梓本 >으로 하여 판각된다. 성달생< 成達生 >은 자< 字 >는 효백< 孝伯 >이며 무신< 武臣 >으로 공조판서< 工曹判書 >를 역임하기도 하였고, 글씨에 능했다. 성달생< 成達生 >이 쓴 법화경< 法華經 >의 판본은 3종이 있다. ① 동생 성개< 成槪 >와 함께 필사하여 태종 5(1405)년 안심사< 安心寺 >에서 간행한 판본 ② 역시 성씨< 成氏 >형제가 필사하고 세종 4(1422)년 고양군< 高陽郡 > 벽제면 대자암< 大慈菴 >에서 간행한 판본 ③ 기왕의 판본이 완결< 완缺 >되어 성달생< 成達生 >에게 다시 쓰게했으나 눈이 어두워 권1만 쓰고 임효인< 任孝仁 >과 분담해서 쓰고 세종 25(1443)년 간행한 판본 이외 조선시대에는 세종년간의 성달생< 成達生 > 필사본, 세조년간의 간경도감판< 刊經都監版 >(국역본), 황진손< 黃振孫 > 필사본< 筆寫本 >, 을해자본< 乙亥字本 >, 갑인자본< 甲寅字本 > 등 여러 판본계통이 있는데 이 가운데 세종 25년에 성달생< 成達生 >, 임효인< 任孝仁 >이 쓴 판본이 가장 많이 복각되었다. 본서는 태종 5년 성달생< 成達生 > 필사본을 등재본으로 전라도< 全羅道 > 운제현< 雲梯縣 >의 두솔산< 兜率山 > 안심사< 安心寺 >에서 판각한 목판본의 후쇄본< 後刷本 >이다.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추풍령IC(3시간)→국도4번(김천 방면)→지방도903번→직지사
● 부산→경부고속도로→김천IC(2시간 30분)→국도4번(영동 방면)→지방도903번→직지사
● 김천역에서 12km, 경부선 직지사 역에서 4km
[대중교통]
● 열차
경부선이용(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김천역 하차
● 시내버스
김천역 및 버스터미널에서 김천-직지사행 11번, 111번 시내버스 이용 10분 간격 운행 25분 소요(05:40-21:30,10분 간격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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