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승주읍
송광사는 조계산의 북쪽 중턱에 위치하며 선암사는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송광사는 우리 나라 3보 사찰중 하나인 승보 사찰로 유명하거니와 선암사 또한 아도화상의 창건 설로 그 전통을 자랑한다. 조계산은 해발 88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산세도 험준하지 않으며 전산이 낙엽활엽수로 덮여 있어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비룡폭포, 감초암폭포 등이 있어 경승을 더해주고 있다. 선암사 쪽에는 수령 수백 년이 되는 상수리, 동 백, 단풍, 밤,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울창하다. 그 반대쪽인 송광사는 신라 혜린대사의 창건 이후 중흥조인 보조국사를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으니 이 또한 승보사찰의 종찰이라 전하다. 중건이 누대에 거듭됨에 전당은 60여 동에 이르러 국내 거찰중에 서 가장 큰 규모를 지녔으나 6·25동란의 전화로 대웅전을 비롯 20여 동이 소실된 상처를 겪었다. 그러나 그 뒤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러 고려 고종제서, 목조삼존불감 등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가 20여 점에 이르러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승보에 그치지 않 고 있다. 한편 선암사도 31본산의 하나로서 송광사와 함께 이 지역 불찰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란 조그마한 암자를 세운 것이 시초라는 창건 설이 있으나 지금 그때 의 문물을 고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그 후 고려 선종9년(1092)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다시 중건, 또 조선 순조24년(1824)에 해붕, 납암, 익종 3대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건물 규모는 28동에 동서 양탑(보물)과 승선교 및 강선루등 보물급 문화재를 비롯하여 많은 지방문화재와 귀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 두 거찰을 남북으로 포옹한 조계산은 일찍이 해남 선종의 연원을 이룩한 명산이라 할 수 있다.
송광사는 조계산의 북쪽 중턱에 위치하며 선암사는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송광사는 우리 나라 3보 사찰중 하나인 승보 사찰로 유명하거니와 선암사 또한 아도화상의 창건 설로 그 전통을 자랑한다. 조계산은 해발 88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산세도 험준하지 않으며 전산이 낙엽활엽수로 덮여 있어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비룡폭포, 감초암폭포 등이 있어 경승을 더해주고 있다. 선암사 쪽에는 수령 수백 년이 되는 상수리, 동 백, 단풍, 밤,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울창하다. 그 반대쪽인 송광사는 신라 혜린대사의 창건 이후 중흥조인 보조국사를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으니 이 또한 승보사찰의 종찰이라 전하다. 중건이 누대에 거듭됨에 전당은 60여 동에 이르러 국내 거찰중에 서 가장 큰 규모를 지녔으나 6·25동란의 전화로 대웅전을 비롯 20여 동이 소실된 상처를 겪었다. 그러나 그 뒤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러 고려 고종제서, 목조삼존불감 등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가 20여 점에 이르러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승보에 그치지 않 고 있다. 한편 선암사도 31본산의 하나로서 송광사와 함께 이 지역 불찰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란 조그마한 암자를 세운 것이 시초라는 창건 설이 있으나 지금 그때 의 문물을 고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그 후 고려 선종9년(1092)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다시 중건, 또 조선 순조24년(1824)에 해붕, 납암, 익종 3대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건물 규모는 28동에 동서 양탑(보물)과 승선교 및 강선루등 보물급 문화재를 비롯하여 많은 지방문화재와 귀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 두 거찰을 남북으로 포옹한 조계산은 일찍이 해남 선종의 연원을 이룩한 명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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