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
이 건물은 조선중기 이후 전통적 다포계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서 높직한 방형의 장대석으로 짜올린 기단에 정평형의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돌리고 공포를 짜올렸는데 포작은 매우 화려한 편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이며 각 간의 중앙에 공간포 1구씩을 배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중앙벽면의 주존불 뒤로는 아미타후불 정화가 돋보이고 있다. 창문은 3간 모두 삼분합으로 중앙간의 문 은 소슬빗살문이고 양간 좌우의 문은 가운데 문만 빗살문이며 그 외는 모두 정자 살문이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끝머리 는 활주를 세웠고, 처마의 곡선도 매우 완만하여 경쾌한 느낌이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덕운선사와 인도승 '스루'가 개 산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감로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감로사는 헌강왕 원년(875) 장흥 가지산 보림사의 보조선사가 이곳에 주석 하면서 증축하였고 다시 조선조로 내려와서는 광해군 2년(1610) 혜정선사가 중수, 숙종 5년(1679)에는 단유대사가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였는데 영조 49년(1773)에 전불당이 실화로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에 바로 승 혜암이 복원하면서 사명을 오늘의 천은사라 하였다고 한다. 천은사는 바로 이웃인 화엄사가 화엄학의 본거지인 것과는 달리 주법당이 극락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어쨌든 현재의 극 락보전은 다포양식의 화려한 건물로 조선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 준 예의 하나라 하겠다. 조성 연대는 18세기 후기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조선중기 이후 전통적 다포계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서 높직한 방형의 장대석으로 짜올린 기단에 정평형의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돌리고 공포를 짜올렸는데 포작은 매우 화려한 편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이며 각 간의 중앙에 공간포 1구씩을 배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중앙벽면의 주존불 뒤로는 아미타후불 정화가 돋보이고 있다. 창문은 3간 모두 삼분합으로 중앙간의 문 은 소슬빗살문이고 양간 좌우의 문은 가운데 문만 빗살문이며 그 외는 모두 정자 살문이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끝머리 는 활주를 세웠고, 처마의 곡선도 매우 완만하여 경쾌한 느낌이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덕운선사와 인도승 '스루'가 개 산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감로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감로사는 헌강왕 원년(875) 장흥 가지산 보림사의 보조선사가 이곳에 주석 하면서 증축하였고 다시 조선조로 내려와서는 광해군 2년(1610) 혜정선사가 중수, 숙종 5년(1679)에는 단유대사가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였는데 영조 49년(1773)에 전불당이 실화로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에 바로 승 혜암이 복원하면서 사명을 오늘의 천은사라 하였다고 한다. 천은사는 바로 이웃인 화엄사가 화엄학의 본거지인 것과는 달리 주법당이 극락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어쨌든 현재의 극 락보전은 다포양식의 화려한 건물로 조선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 준 예의 하나라 하겠다. 조성 연대는 18세기 후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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