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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유 영정 - 이만유 영정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80

이 영정은 전신상으로 사모관대에 대례복으로 정장한 조선시대 후기 영·정조때의 전형적인 초상화 양식을 취하고 있는 공신도상이다. 약간 우향하여 교의에 두손을 소매안으로 넣고 앉은 자세로 운문이 장식된 흑선색 관복에 가슴의 흉배는 무신의 공훈으로 승급한 해태와 십장생을 수놓은 것이다. 흰 수염의 얼굴표정은 이만유의 말년 모습으로 간주되는데, 특히 얼굴에는 만년의 노인다운 인자한 성품이 잘 드러나 있다. 또 이 안면의 표현화법은 엷은 담채로 음영을 가하고 주 름살을 선묘한, 초상화의 주안점이 되는전신수법이 잘 구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신상은 좌우로 그림이 약간씩 잘려 나갔으며 우측부분은 상이 손상되어 있다. 이만유(1680~1750)는 본관은 한산, 목은 이색의 15대 손으로 충남 홍주생이다. 자는 숙함, 호는 중효문무를 겸비하였다는 '4상당'으로 영조가 사호한 것이라 한다. 숙종 45년(1719) 무 과에 급제한 후 낙안·영흥 등 여러현의 현감 또는 군수를 지냈으며 1743년에는 정사 조현명과 함께 부사로서 청의 심 양에 다녀왔는데, 그때 뛰어난 문무와 인품으로 대청교섭의 공을 높이 사서 형조판서가 되기도 하였다. 후에 여러 관직 을 지내다 말년에는 담양에 은거하여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사후에는「숭정대부판돈녕부사」에 추증되었다. 이 영정은 청에 다녀온 외교수완에 대한 공훈으로 짐작되며, 그 제작시기는 노년의 모습으로 보아 청에 다녀온 (1743년) 60세 이후 세상을 떠난 1750년경으로 추정되며 제작자는 당 시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것으로 공신영정의 격식과 함께 뛰어난 솜씨를 갖추었다. 따라서 이 영정은 조선시대 후기의 공신초상의 대표적인 예로 초상화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크며 회화적 기량도 뛰어난 가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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