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45
은적사는 해남읍을 바로 뒤에서 감사고 있는 금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사찰의 규모는 산중의 작은 암자이며, 건물로는 법당인 약사전이 있고 그 곁에 요사체가 있는데 주존불이 철조로써 지권인을 결한 비로사나불인데 왜 법당은 약사전이라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사찰에서 전하는 구전으로는 철종 7년(1856, 함풍 6년 병진) 5월에 준호대사가 이 절을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비로사나불좌상은 하부동체가와 무릎부분이 파손된 상태이 다. 두상이나 흉부수인 의문 등은 환전하리만큼 보존이 잘 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인데 그 날발이 큼직하지 않고 소형으로 표시되었으며 두정에는 육계가 밋밋하게 표현되었다. 상호는 원만상으로 양 쪽 볼은 양감을 주어 살아있는 피부감을 느끼게 한다. 눈은 반개하고 콧날은 오똑하며 입은 다물었고 턱은 두턱이 지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돌려지고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서 어깨 위에서 멎어 있다. 귓부리는 관통되었는데 이 신라, 고려대의 금속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쪽 어깨에서 3~4겹씩의 의문이 양팔 밑으로 흘러내려 양 무릎을 덮었고 가슴에는 군의의 주름이 선각되고 좌 상 뒷면에도 법의의 선각이 보인다. 수인은 지권인이나 양쪽 손가짐이 전형과는 달라서 주목된다. 즉 정상적인 지권인에서는 오른쪽 손을 위로하고 왼쪽 손을 밑으로 하여 엄지를 올리고 있는 데 이 불상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보 물 131호)과 동식이어서 증심사불의 조성이 9세기경의 작풍으로 추정하되 보다 말기에 가까운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연결되는 일면을 갖춘 작례로 매우 주목되고 있다. 따라 서 이 철불의 연대는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은적사는 해남읍을 바로 뒤에서 감사고 있는 금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사찰의 규모는 산중의 작은 암자이며, 건물로는 법당인 약사전이 있고 그 곁에 요사체가 있는데 주존불이 철조로써 지권인을 결한 비로사나불인데 왜 법당은 약사전이라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사찰에서 전하는 구전으로는 철종 7년(1856, 함풍 6년 병진) 5월에 준호대사가 이 절을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비로사나불좌상은 하부동체가와 무릎부분이 파손된 상태이 다. 두상이나 흉부수인 의문 등은 환전하리만큼 보존이 잘 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인데 그 날발이 큼직하지 않고 소형으로 표시되었으며 두정에는 육계가 밋밋하게 표현되었다. 상호는 원만상으로 양 쪽 볼은 양감을 주어 살아있는 피부감을 느끼게 한다. 눈은 반개하고 콧날은 오똑하며 입은 다물었고 턱은 두턱이 지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돌려지고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서 어깨 위에서 멎어 있다. 귓부리는 관통되었는데 이 신라, 고려대의 금속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쪽 어깨에서 3~4겹씩의 의문이 양팔 밑으로 흘러내려 양 무릎을 덮었고 가슴에는 군의의 주름이 선각되고 좌 상 뒷면에도 법의의 선각이 보인다. 수인은 지권인이나 양쪽 손가짐이 전형과는 달라서 주목된다. 즉 정상적인 지권인에서는 오른쪽 손을 위로하고 왼쪽 손을 밑으로 하여 엄지를 올리고 있는 데 이 불상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보 물 131호)과 동식이어서 증심사불의 조성이 9세기경의 작풍으로 추정하되 보다 말기에 가까운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연결되는 일면을 갖춘 작례로 매우 주목되고 있다. 따라 서 이 철불의 연대는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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