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군자동 237-4
여수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으로 임진왜란 때 해전의 격전지로 이순신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석인(石人) 역시 이순신과 관계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하여 이순신이 석인 7구를 만들어 세워 적의 눈을 속여 승전의 길로 이끌었다는 내력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여수에는 석인이 7구가 있었다는데 6구는 유실되고 1구만 남아 진남관 뜰안에 보존되고 있다.
기단 대석 위에 사람 크기의 석인을 화강암으로 만들어 세웠는데 머리에 두건 같은 관을 쓰고 손은 팔짱을 끼고 유유히 서서 적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한편 배 닻줄을 매어두는 계선주(繫船柱)로 이용했던 것을 석인 계선주라고 하는데 전설로는 이 석인 계선주에 배를 매어 놓으면 왜놈들이 배에 접근하다가도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해 놀라 달아났다고 한다.
옛날 충무공이 거북선을 만들던 시정동 선소에도 같은 형의 석인이 있는데 이 석인은 벙거지를 쓰고 있다. 이 석인이 과연 계선주의 일종인지 아니면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워 놓은 장승의 일종인지는 그 유래가 분명치 않다.
여수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으로 임진왜란 때 해전의 격전지로 이순신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석인(石人) 역시 이순신과 관계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하여 이순신이 석인 7구를 만들어 세워 적의 눈을 속여 승전의 길로 이끌었다는 내력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여수에는 석인이 7구가 있었다는데 6구는 유실되고 1구만 남아 진남관 뜰안에 보존되고 있다.
기단 대석 위에 사람 크기의 석인을 화강암으로 만들어 세웠는데 머리에 두건 같은 관을 쓰고 손은 팔짱을 끼고 유유히 서서 적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한편 배 닻줄을 매어두는 계선주(繫船柱)로 이용했던 것을 석인 계선주라고 하는데 전설로는 이 석인 계선주에 배를 매어 놓으면 왜놈들이 배에 접근하다가도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해 놀라 달아났다고 한다.
옛날 충무공이 거북선을 만들던 시정동 선소에도 같은 형의 석인이 있는데 이 석인은 벙거지를 쓰고 있다. 이 석인이 과연 계선주의 일종인지 아니면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워 놓은 장승의 일종인지는 그 유래가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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