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대호동 825
심향사는 금성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원래 사명은 신왕사라 기록하고 있다. 1976년 미륵전을 해체복원할 때 상량문에서 「금성산신황사용화당중건상량문‥‥건륭오십사년 기유…」이라 하여 오늘의 심향사를 옛날에는 신왕(황)사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머리위로 육계가 높직하게 솟아있고 머리는 나발을 하였으며 상호는 계란형의 원만상으로 넓은 이마에 중앙에는 백호가 있다. 눈썹의 윤곽이 곡선을 그으며 귀 위로 돌았으며 눈은 정안인데 전면에서 하향하여 선정의 경지에 이른 약간 밑을 보고 있고, 코는 날카로와 넘치는 긴장감이 감돈다. 귀는 길게 뻗어 밑으로 흐르는 법의에 닿은 듯이 내려왔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여 법의는 통견으로 배 위를 덮으면서 U자형을 하였다. 의문은 섬세하게 어깨밑으로 내려와 긴 가닥이 손목 에 걸쳐 있으며 군의는 가부좌한 무릎을 덮은 상현좌를 취했 다. 수인은 구품수인인 중품인을 하여 이 불상이 아미타여래 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고려후기를 대표할 만한 충남 장곡사의 금동약사 불과 여러 가지 세부기법에서 흡사한 점이 보이고 있다. 자세, 체구, 얼굴, 착의법 등이 거의 유사하며, 특히 길상좌의 자세 나 체구는 물론 왼쪽 어깨의 번잡한 주름과 겹침의 표현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불상의 재료는 건칠불로 마와 창호 지 회를 섞어 만들었으며 그 위에 개금을 한 것이다. 이 불 상의 밑바닥은 목판으로 붙여 놓았는데 1909년에 개금불사를 했던 기록이 적혀 있다.
심향사는 금성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원래 사명은 신왕사라 기록하고 있다. 1976년 미륵전을 해체복원할 때 상량문에서 「금성산신황사용화당중건상량문‥‥건륭오십사년 기유…」이라 하여 오늘의 심향사를 옛날에는 신왕(황)사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머리위로 육계가 높직하게 솟아있고 머리는 나발을 하였으며 상호는 계란형의 원만상으로 넓은 이마에 중앙에는 백호가 있다. 눈썹의 윤곽이 곡선을 그으며 귀 위로 돌았으며 눈은 정안인데 전면에서 하향하여 선정의 경지에 이른 약간 밑을 보고 있고, 코는 날카로와 넘치는 긴장감이 감돈다. 귀는 길게 뻗어 밑으로 흐르는 법의에 닿은 듯이 내려왔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여 법의는 통견으로 배 위를 덮으면서 U자형을 하였다. 의문은 섬세하게 어깨밑으로 내려와 긴 가닥이 손목 에 걸쳐 있으며 군의는 가부좌한 무릎을 덮은 상현좌를 취했 다. 수인은 구품수인인 중품인을 하여 이 불상이 아미타여래 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고려후기를 대표할 만한 충남 장곡사의 금동약사 불과 여러 가지 세부기법에서 흡사한 점이 보이고 있다. 자세, 체구, 얼굴, 착의법 등이 거의 유사하며, 특히 길상좌의 자세 나 체구는 물론 왼쪽 어깨의 번잡한 주름과 겹침의 표현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불상의 재료는 건칠불로 마와 창호 지 회를 섞어 만들었으며 그 위에 개금을 한 것이다. 이 불 상의 밑바닥은 목판으로 붙여 놓았는데 1909년에 개금불사를 했던 기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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