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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보조국사비 - 송광사 보조국사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이 비는 송광사의 경내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부도전 내에 석 비와 함께 유존하고 있다. 비의 형식을 보면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었다. 귀부는 와대가 땅에 묻혀 보이지 않고 귀갑 상면만 노출되어 있는데, 귀두는 용두화되었으나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여의주도 함유하지 않고 있다. 또 귀두 뒷면에 귀가 솟아 있는바 이러한 양식은 매우 특이한 예라 하겠다. 귀갑문은 유각문으로 전대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으나 형식화 및 약화되었고, 그 중앙으로는 방형의 비좌를 안치하여 비신을 받치고 있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발견하여 생동감을 주고 있으나 그 조각기 법이 매우 서투르며 살아 꿈틀거리는 긴장감 등은 볼 수가 없다. 역시 시대적인 후진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신 상단에는 「보조국사비명」이라 전액하고 비제는 「해도조 선국호남순천부 조계산송광사증익불일보조국사비명병서」라 해서 체로 쓰고 후미에는 「숭복기원무진오십일년무오시월일중건사문 설명」이라 하여 건립년대는 숙종 4년(1678)임을 알 수 있다. 위 내용에 의하면 원래의 비석이 아니고 이 시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비문은 김군수가 찬하고 유신이 썼다. 보조국사(1158~1210)의 호는 목우자이며 속성은 정씨로 서흥(지금의 황해도) 출생이다. 의종 19년91165)에 출가하여 종휘에게서 삭발하고 명종 12년(1182)에 승선에 뽑혔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평양 보제사에서 열린 담선법회에 참가하여 선배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서 창평 청원사에서 단경을 읽고 대각하였으며 결국 이곳에서 최초로 정혜결사를 결의 하였다. 신종 3년(1200) 송광 산 길상사에 옮겨 10여년간 불도를 닦아 정혜쌍수를 주장할 즈음에 희종이 즉위하여 그해 (1205)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로 고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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