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408
개령 현감 정난원이 1473년(성종4년)에 동부리 마을 동쪽 유동산(<柳東山>, 일명 관학산<觀鶴山>)밑 감천변에 창건하고 1522년 현감 태두남이 1563년에는 현감 윤희주가 중수했다. 1609년(광해 1년)에 홍수로 인한 잦은 침수로 현감 이창거가 동쪽 어딘가에 옮겼다가 1837년(헌종 3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일제시대 말에 김산향교에 폐합 되었다가 1946년에 복원되고 1988년부터 91년까지 4년간에 걸쳐 중수했다. 개령향교는 지례향교와 같은 소설로 5성(공자<孔子>, 안자<顔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증자<曾子>)과 송조2현(정호<程顥>, 주희<朱憙>) 및 우리나라 18현(벽총<벽聰>, 최치원<崔致遠>, 안향<安珦>, 정몽주<鄭夢周>,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김린후<金麟厚>,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 조헌<趙憲>,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박세채<朴世采>)을 제향했다. 석전은 공자탄신일에 지내다가 최근에는 춘추 중월(중월 2월, 8월) 첫정일<上丁日>로 정했다. 개령향교는 만인소<萬人疏>사건의 영남 중심지였다. 1881년 김홍집이 일본 주재 청국 공사가 지은 조선책략을 입수하여 왕에게 바치고 개혁을 주창하여 안동 유생의 주동으로 일이 있었는데 영남지방은 개령향교를 중심으로 이 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연대는 1473년(성종 4년)이며, 규모로는 4방3간, 맛배지붕, 건평21.6평, 부속건물은 명륜당, 대성문, 일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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