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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대광명전 - 추사의 방면을 기원하며 세운 선원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표충사 뒷편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별원 성격의 건물군인데 지금도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맞배지붕을 갖은 익공양식으로 매우 단아한 건물이다.
일단의 석재기단을 이루고 정평주초위에 민흘림이 뚜렷한 원주를 세웠다.

외부포작의 수법은 초익공이며 주간 중앙의 화반이며 창방, 평방 그리고 장혀와 굴도리에 연화문과 운학 등의 문양이 정교하다. 한편 문은 전면 중앙어간에는 3분합, 좌우협간에는 2분합의 솟을 빗살문으로 정교한 세공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내부에는 법신불인 비로차나불을 봉안하고 천장도 우물전창으로 연화문과 운학문양은 그 색채와 문양자체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우수한 작품이라 하겠으며 벽화 역시 우수한 작품이다.

대광면전은 헌종 7년(1841)에 초의선사가 창건한 것이며 단청과 벽화도 초의 선사의 작품이라 전해지고 있다.
대광명전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초의선사(1786∼1866), 전라우수사(右水使)로 해남우수영에 내려와 있던 위당 신관호(威堂 申觀浩, 1811∼1884), 신위당의 동문인 소치 허유(小癡 許維, 1809∼1892)와 관계 깊은 얘기가 초의대사가 지은 「해남현 두륜산 대둔사 비로전 상량문」과 「대광명전 후불탱화기」에서 전해오고 있다.

추사선생이 안동 김씨의 세도다툼에 연루되어 헌종 6년(1840)에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어 오랫동안 풀려나지 못하자 추사의 방면을 기원하면서 스승의 회갑을 축하하고 스승의 장수를 빌기 위해 소치를 불러 측근에 두고 스승의 오랜 지기인 초의선사와 의논하여 조촐한 불사를 일으킨다.
대흥사 남원 상단에 가장 터 좋은 곳에 대광명전을 신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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