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831
대원사는 천봉산 봉우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둔 정남향을 하고 있는 사찰로 6·25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유존되고 있었으나 여수사건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극락전 건물만은 남아 있게 되었다. 사찰의 연혁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초창은 신라지증왕시 아도화상에 의해 이뤄졌을며 그 후로 고려시대에 와서는 조계 제5손 원오국사가 중건하였고 조선조에 넘어와서는 영조 43년에 중창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건물의 규모를 부면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 의 건물로 기단은 전면에 1m이상의 잡석축대를 쌓고 양면 및 배면은 얕은데 전면중앙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주초식이며 기둥은 약간 배흘림이 있고 우주에는 미세 한 귀솟음이 보인다. 공포의 형식은 평방 위로부터 짜여진 다포 형식으로 전후 각 주간에는 공간포를 각각 2구씩 배열하였으며 출목은 외 3출목, 내 4출목으로 외 7포작, 내 9포작 형식이다. 외 부 쇠서는 3앙1수설로서 앙설 밑에는 연봉을 조출시켰다. 가구를 보면 대량이 내고주에 끼워져 상부가구재를 받고 있으며 종량은 대량위에 놓여진 동자주가 받게 하였다. 천장은 하중도 리 위로부터 울물전창으로 처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청 은 내외부 금모노단청을 하였다. 불단위로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시져 있는데 좌우보처로 두협시불이 있어야 하나 한불은 6·25후 분실되었다 하며 한 불의 협시불만 우측에 남아 있다.
대원사는 천봉산 봉우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둔 정남향을 하고 있는 사찰로 6·25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유존되고 있었으나 여수사건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극락전 건물만은 남아 있게 되었다. 사찰의 연혁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초창은 신라지증왕시 아도화상에 의해 이뤄졌을며 그 후로 고려시대에 와서는 조계 제5손 원오국사가 중건하였고 조선조에 넘어와서는 영조 43년에 중창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건물의 규모를 부면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 의 건물로 기단은 전면에 1m이상의 잡석축대를 쌓고 양면 및 배면은 얕은데 전면중앙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주초식이며 기둥은 약간 배흘림이 있고 우주에는 미세 한 귀솟음이 보인다. 공포의 형식은 평방 위로부터 짜여진 다포 형식으로 전후 각 주간에는 공간포를 각각 2구씩 배열하였으며 출목은 외 3출목, 내 4출목으로 외 7포작, 내 9포작 형식이다. 외 부 쇠서는 3앙1수설로서 앙설 밑에는 연봉을 조출시켰다. 가구를 보면 대량이 내고주에 끼워져 상부가구재를 받고 있으며 종량은 대량위에 놓여진 동자주가 받게 하였다. 천장은 하중도 리 위로부터 울물전창으로 처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청 은 내외부 금모노단청을 하였다. 불단위로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시져 있는데 좌우보처로 두협시불이 있어야 하나 한불은 6·25후 분실되었다 하며 한 불의 협시불만 우측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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