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포두면 봉림리 700
금탑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정유재란 때 사원 전체가 병화로 소각되었으나 선조 36년(1603) 다시 왕순 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후 숙종 18년(1692)에 또 참화를 입고 지금 현재 극락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금탑사는 고흥에서 20km가량 떨어진 천등산 골짜기에 있는 조그마한 사찰로 옛부터 전해온 극락전과 최근에 건립한 성 산각, 종각, 요사체 등이 있다. 극락전은 축대형식으로 쌓은 3단의 기단 위에 정면 3간, 측 면 3간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배흘림이 약 한 굵은 원주를 세웠다. 창방과 평방은 굵은 부재로 하여 길 게 좌우를 빼냈고 그 위에 주간포를 배치하였다. 주두와 평 방이 결구된 부분의 내부에 용의 모양을 만들어 용두를 밖을 내놓았고, 외 3출목에 내 4출목이다. 살미첨차의 앙설부분은 둥그렇게 굽어올라 가지 않고 직절하여 각을 이루고 있다. 첨차의 굽면 역시 둥그렇지 않고 사절하여 강직한 맛을 풍긴 다. 약간 넓은 어간에는 2조의 주간포가 있고 협간에는 1조의 주간포가 있다. 내부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2개의 대량에 걸쳐 고주를 세우고 닷집을 만들었으며, 연등천장이면서 중앙부분만 우물천장으 로 보개천장을 설치하였다. 이 보개천장과 내부공포와의 사 이에는 다시 빗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용의 몸뚱이를 한 부재로 공포와 대량을 연결하여 설치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2분합의 문은 빗살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내부의 단청은 잘 보존되었으나 외부의 단청은 거의 퇴화하여 보이지 않는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처마밑이 모두 공포로 휩싸인 듯한 느낌을 주며 4우부에 활주를 세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