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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노비 - 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노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산 796-1

회은장노의 행적은 비문에 의하면 그의 선대는 남원에 거주하였고 그의 속성은 기씨이며 자는 응준, 호는 회은이라 하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옥지노사가 낙발하여 승려의 생활을 하였으며 1636년(인조 14) 청나라 군사가 우리 나라에 침입하였을 때 전라순찰사 이시방이 관군을 동원하자 이에 호하여 벽암대사가 승병을 일으키자 이때 호은은 참모로 활약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높이 사서 절형과 양호도총섭을 제수하였고 1647년에는 지렵지공으로 가선대부와 팔도도총섭을 받았다. 1660년(현종 원년)에 자헌에 가자되고 승병대장이 되었으며 1663년(현종 4)에 정헌으로 특별히 가자를 받아 군무에 재임하였다. 이 비는 음기에 의하면 순찰사 박신규와 당시의 광양현감 안시익(1667년 숙종 3, 8~11월 재임), 그리고 송천사의 협동에 의하여 비가 건립된 것이다. 비의 건립년대는 말미에 「황명 숭정병자후사십이년정사사월일」이라 한 것으로 보아 1677년 (숙종 3)임을 알 수 있다. 음기는 비 건립에 참여한 시 순찰사와 광양현감 외에도 본사질·각수·도십수·도감·삼강 등 의 명록이 있다. 전액은 회은장로비명, 비명은「유명조선국전 라도광양백운산송천사지고정헌대부팔도도총섭겸승병대장회은 장로비명」이다. 비는 이수와 비신 그리고 좌대로 이뤄져 있는데 이수의 전면에는 쌍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하는 조각이 되어 있고 후면에도 용을 비롯하여 게, 개구리, 자 라 등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비신의 비문은 대례로 판독이 가능한 양질의 돌을 사용하였다. 다만 비신에 군데군데 탄환 자국이 있으며 비의 모서리는 농부들이 낫을 갈아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좌대는 잡초와 흙에 묻혀있다. 비명이 승려의 법명이 아닌 회은이라 호를 썼던 것은 회은이 승려로서 평가되기보다는 오히려 승병대장으로 더 유명하였던 것에 기인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비의 이수에 용을 비롯한 동물들의 조각이 비교적 섬세하게 되어 있으며, 승려는 낮게 평가하는 조선시대에 순찰사나 현감이 이 비의 건립에 앞장서서는 건립하였다는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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