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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충열문 - 곡성 충열문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곡성군 입면 삼오리 산60

이 건물은 다듬어진 원형의 초석위에 원주를 세우고 다포가구법을 갖춘 전형적인 정려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전면에는 중앙원주 평방위에 양두에서 용두를 입체적으로 조각 노출시켰는데 이는 다포 후기 양식에서 나타나는 형식중의 하나라 하겠으며 사면 주위로는 홍살을 돌렸다. 이 건물은 조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때 창의로 청주, 황주 등지에서 전공을 세운 박언배와 그의 부인 완산 이씨에 대한 충과 열을 기념키 위한 사액정려이다. 박언배의 자는 오중, 호는 일심 헌으로 세종때 악율에 정통하여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정극과 더불어 우리 나라 삼대 악성이라 일컫는 난계 박연의 오대손으로 곡성군 입면 삼오리(궁동)에서 출생, 인조 4년 병인(1626)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년 뒤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청주, 황 주에서 전공을 크게 세운 후 순절하였다. 뒤에 초호반장의 날에 부인 완산 이씨는 2세의 유아를 사숙에게 부탁하고 「지아비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인은 지아비에게 정열함은 인지상정이다 (부위국진충 부위부정영인지상야)」라 쓰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충과 열이 후대에 알려져 이조 순조 5년 을축(1805)에 나라에서 동몽교관겸 선무원종삼 등을 증하고 정려를 명하여 사액하였다. 현판에는 「충신 증동몽교관 조봉대부박언배 처열부 완산이씨지 려」라 세겨져 있다. 1976년에 보수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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