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691-1
강진 향교는 확실한 창조년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교재현동이리」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16C 이전에 향교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강진 향교 역시 다른 예와 같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고 1613년(광해군 5) 곽기수·임자신 등이 군수 정인의 도움을 얻어 사마재를 건립하였고 그 후 1675년(숙종 1)에 본격적으로 향교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의 규모를 보면 외삼문,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대성 전, 교직사 등이 있는데 전학후묘의 배치에 따라 남서향의 축배치와 동·서재의 좌우대칭을 보이고 있는 경사지건축이 다. 대성전의 좌측에는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 루 있으며 대성전에 들어가는 협문이 좌우에 있다. 건축형식을 보면 대성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원형의 정 평주초상에 민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는데 전퇴의 전면은 개방되었으나 측면은 벽으로 막아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가구는 전면에 도리가 한 개 더 있는 2고주의 반7량이며 전후 에 모두 포작되어 있는 공포는 주두에 공안이 없는 두공담차 를 올리고 외목도리의 행공담차는 익공 위의 소소로 받치고 있는 주심포계의 외1출목 이익공양식이다. 도리와 장혀에 결 구된 계두모양의 초공과 화반이 귀면인 것이 특이하며 익공 의 촛가지는 앙설로 되어 있다. 내부는 운공형 보아지로 보를 받치고 있으며 종도리와 종량의 연결은 파연태공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며 풍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자연석의 덤벙주초에 배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으며 좌우 퇴간은 1간 크기으 방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에 가구는 5량으로 되 어 있으며 공포는 익공의 촛가지가 앙설과 수설로 되어 있는 이익공양식이다. 동제는 정면 3간 측면 1간 전퇴로서 좌측 2간은 1간 크기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전면은 마루이고 우측 퇴간은 누마루이다.
강진 향교는 확실한 창조년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교재현동이리」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16C 이전에 향교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강진 향교 역시 다른 예와 같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고 1613년(광해군 5) 곽기수·임자신 등이 군수 정인의 도움을 얻어 사마재를 건립하였고 그 후 1675년(숙종 1)에 본격적으로 향교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의 규모를 보면 외삼문,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대성 전, 교직사 등이 있는데 전학후묘의 배치에 따라 남서향의 축배치와 동·서재의 좌우대칭을 보이고 있는 경사지건축이 다. 대성전의 좌측에는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 루 있으며 대성전에 들어가는 협문이 좌우에 있다. 건축형식을 보면 대성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원형의 정 평주초상에 민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는데 전퇴의 전면은 개방되었으나 측면은 벽으로 막아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가구는 전면에 도리가 한 개 더 있는 2고주의 반7량이며 전후 에 모두 포작되어 있는 공포는 주두에 공안이 없는 두공담차 를 올리고 외목도리의 행공담차는 익공 위의 소소로 받치고 있는 주심포계의 외1출목 이익공양식이다. 도리와 장혀에 결 구된 계두모양의 초공과 화반이 귀면인 것이 특이하며 익공 의 촛가지는 앙설로 되어 있다. 내부는 운공형 보아지로 보를 받치고 있으며 종도리와 종량의 연결은 파연태공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며 풍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자연석의 덤벙주초에 배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으며 좌우 퇴간은 1간 크기으 방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에 가구는 5량으로 되 어 있으며 공포는 익공의 촛가지가 앙설과 수설로 되어 있는 이익공양식이다. 동제는 정면 3간 측면 1간 전퇴로서 좌측 2간은 1간 크기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전면은 마루이고 우측 퇴간은 누마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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