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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 장 - 참빗 장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550

빗은 형태에 따라 빗살이 굵은 것을 '류', 가는 것을 '비'라고 한다. 빗살이 성긴 얼레빗(월류),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참빗(진류) , 머리를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다듬는데 쓰인 면빗(면류) 등으로 나뉜다. 고대의 낙랑유적에서 목제빗이 발견되었고 『삼국사기』 <복식금제조>에는 신분에 따라 빗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참빗은 대류·중류·어중류·밀류 따위가 있는데『대전회통 』에 의하면 외공장으로 류장은 경상도 2명, 전라도 1명, 강 원도 6명 등이 있었는데 전라도에서는 예로부터 담양·영암 ·나주 등지가 산지로 이름 있었다. 담양의 죽물은 예전부터 유명하다. 빗의 경우 1917년(대정 6) 에 설립된 진류계가 그 주축을 이루어 뒤에 (1992년) 담양산업조합으로 발전했다. 영암 빗의 경우 1930년대에는 연간 400만개를 넘을 정도로 성행했고 일본·대만·만주 등지까지 수출했다. 두 지역 빗은 제작과정이나 공구, 명칭 따위에서 서로 많은 차이가 있다. 영암의 참빗은 썩캐울치(밀류)·어중류·중류·대류로 나뉘는데 재료는 2~3년생 대나무를 쓴다. 모막이(맥이)재료는 우 골을 쓰는 점이 담양 빗과는 다르다. 묵직칼·이는톱·틀칼 ·조금틀·살고리짝·골갱이(긁키)·살잽이깨칼 등을 사용하 여 제작한다. 실로 살을 엮는 빗매기 작업의 경우 미영(무명)을 쓰는데 이 분사·양사 등도 쓰인다. '산흙'이라는 물감을 쓰며 등대에 는 청강수를 대끝에 찍어 '영암특산'이란 글씨와 원출산을 그려 넣는다. 영암의 참빗은 영암읍 망호리에서 전통적으로 생산되었지만 최초 제작시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 마을은 96호중 93호가 경주이씨로 빗을 만드는 집이 많으나 지금은 이규기 (1887~1952)와 아들 이종일(1913~1964)을 거쳐 이식우에 의해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 이식우는 부친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빗 만드는 것을 배웠다. 담양 참빗은 대류·밀류·써울치·음양류·호류 따위가 있다. 재료는 담양 일대에서 생산되는 왕대를 사용하며 매기용 재료는 영암에서처럼 우골은 쓰지 않고 뿔때죽나무, 먹감나 무(흑포) 등이 사용된다. 대썬톱으로 자른뒤 재작칼, 아시뱃 등다리, 조름등다리, 피죽등다리, 전짐 골판(장), 바닥골아시, 초벌글키 따위의 공구를 사용해 빗을 제작한다. 기능보유자 고행주는 할아버지 학진(1867~1936)의 일제 때 빗조합의 진류 계원으로 활동했으며 아버지 제업(1901~1979)을 이어 기능을 전
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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