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산 96
매향비는 '매향'을 하면서 그 연유와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집단)을 기록하는 비문을 말한다. '매향'은 향을 묻는 민간불교양식을 지칭한 것으로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파악되어 지고 있다. 특히 매향비에 나타난 발원형태는 모두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다. 즉 매심한 향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와 하생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해남 매향암각문 마산면 맹진리 만매산의 북서쪽 능선에 있 는 속인 '장군마위'에 음각되어 있다. 장군바위 뒷 편 작은 틈 사이(상단폭 50~60cm, 하단폭 1.5m)70도 정도에서 내경화 된 자연안벽에 종서로 10행 59자가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마멸되지 않아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 내용은「산현동 촌자패포 매향치미타향 혜과목중생소명 오백보」인 데 대략 " 죽산현의 동쪽 □패포에 미타향도 58 명과 상당마을 주민 백명이 함께 모여 매향을 행하였따. 1406년(영락 4, 대종 6)에 세웠고 이 매향의식은 법당의 주관 하에 혜관 등이 참여 하였다" 이다. 이 비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향도의 숫자(조직의 규모)와 향도와 상당민-백성과의 상호관계이다. 즉, 이 매향의식이 순수 민간신앙 결사로 볼 수 있는 향도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이 다. 고려조의 경우 향도조직은 천여명을 넘는 거군적인 것이 면서 행정조직과도 밀착된 것이었다. 이는 고성의 삼일포 매 향비와 해미 매향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의 규모는 분화·축소되어 고려 말기와 조선초기에는 자연 촌을 중심으로 소규모 촌락 공동체적 성격을 갖게 되어 불교 적인 본래의 기능은 퇴색되어 순수민간신앙 결사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미타향도 58이라는 명시는 매우 귀주한 예이다. 전남지방에는 7~8개소의 매향비가 발견되는데 모두가 여말선 초기에 해당된다. 이는 이 지역이 왜구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당하는 것과 연관지어 미래구복적인 매향의식이 성행하게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들 매향비 중에서 해남 매향배는 가장 상태가 좋다.
매향비는 '매향'을 하면서 그 연유와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집단)을 기록하는 비문을 말한다. '매향'은 향을 묻는 민간불교양식을 지칭한 것으로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파악되어 지고 있다. 특히 매향비에 나타난 발원형태는 모두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다. 즉 매심한 향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와 하생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해남 매향암각문 마산면 맹진리 만매산의 북서쪽 능선에 있 는 속인 '장군마위'에 음각되어 있다. 장군바위 뒷 편 작은 틈 사이(상단폭 50~60cm, 하단폭 1.5m)70도 정도에서 내경화 된 자연안벽에 종서로 10행 59자가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마멸되지 않아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 내용은「산현동 촌자패포 매향치미타향 혜과목중생소명 오백보」인 데 대략 " 죽산현의 동쪽 □패포에 미타향도 58 명과 상당마을 주민 백명이 함께 모여 매향을 행하였따. 1406년(영락 4, 대종 6)에 세웠고 이 매향의식은 법당의 주관 하에 혜관 등이 참여 하였다" 이다. 이 비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향도의 숫자(조직의 규모)와 향도와 상당민-백성과의 상호관계이다. 즉, 이 매향의식이 순수 민간신앙 결사로 볼 수 있는 향도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이 다. 고려조의 경우 향도조직은 천여명을 넘는 거군적인 것이 면서 행정조직과도 밀착된 것이었다. 이는 고성의 삼일포 매 향비와 해미 매향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의 규모는 분화·축소되어 고려 말기와 조선초기에는 자연 촌을 중심으로 소규모 촌락 공동체적 성격을 갖게 되어 불교 적인 본래의 기능은 퇴색되어 순수민간신앙 결사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미타향도 58이라는 명시는 매우 귀주한 예이다. 전남지방에는 7~8개소의 매향비가 발견되는데 모두가 여말선 초기에 해당된다. 이는 이 지역이 왜구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당하는 것과 연관지어 미래구복적인 매향의식이 성행하게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들 매향비 중에서 해남 매향배는 가장 상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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