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동호동 230-1
- 내력
낙동강 유역에 위치하여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었던 초계 밤마리에서는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광대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이 오광대를 놀았던 대광대들이 각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하면서 의령 신반 진주 산청 김해 가락 등 경남 해안일대에도 오광대가 퍼져 나갔고, 동래 수영 등에서는 들놀이로 일컬어졌다. 따라서 통영 오광대(統營 五廣大)는 초계 밤마리의 오광대를 큰 집으로 하고 있다.
구전의 의하면, 통영 명정동에 거주하던 이화선씨가 1900년경에 초계밤마리에서 오 광대 놀음을 구경하고 와서, 이곳 동료들과 오광대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에서 따온 이름이라기도 하고, 오행설에 바탕을 두어서 부르 기도 하는데, 후자가 유력하다.
둘째마당 풍자탈에서 하인 말뚝이가 양반에게 갖은 욕설을 퍼붓고 나서, 자기가 진짜 양반임을 말하고는 가짜양반들을 능지처참할 것이지만 특별히 용서하니 그리 알고 돌 아가서 농민을 사랑하라고 호통한다. 양반들은 죽은 목숨이 살았으니 얼마나 좋으냐 는 내용의 합창을 하며 퇴장한다.
굿거리장단에 맞춰서 사자와 담비가 싸우다가 담비가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다섯째 마당 포수탈. 포수가 사자를 쏘아죽이는데, "관사령났네"로 시작되는 포수의 독백이 길다.
- 속내
통영 오광대는 다른 오광대와 마찬가지로 현실 폭로나 풍자를 통하여 조선조 중엽 의양반계급과 그들의 형식적인 윤리에 대한 일종의 비판정신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가면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새로 일어난 서민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통영 오광대는 거의 종교적인 의식과는 무관한 오락적인 놀이같이 보인다. 그러나 가면에 고사를 지내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비는 기우제 행사의 하나로 논적 이 있었다는 점에서 통영 오광대도 민간신앙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
- 짜임새
첫째마당(문둥탈) : 문둥이가 소고를 들고 나와 춤을 추면서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둘째마당(풍자탈) : 말뚝이가 양반들의 근본을 폭로하며 자기야말로 대대손손 양반이라고 호통을 친다.
셋째마당(영노탈) : 영노라는 괴물이 양반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양반이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고 하면서 영 노에게 쫓긴다.
넷째마당(농자탈) : 두 상좌가 제자각시와 춤을 추다가 할미양반에게 쫓겨 퇴장한다. 할미양반과 제자각시가 통정하여 낳은 아기를 어르는 할미를 제자 각시가 죽인다.
다섯째마당(포수탈) : 담비는 사자에게 잡아먹히고 사자는 포수의 총에 맞아 죽는다.
넷째마당 농창탈은 파계승을 응징하는 중과장과 영감과 처첩사이의 삼각관계를 표현 하는 할미·영감과장을 합친 과장이다.
할미는 충청도에서 집을 떠난지 3년이 지난 영감을 찾으려 팔도를 다니다가 통영 오 입쟁이 놀이터에 온다. 할미는 마을사람(樂士)의 권유로 용왕제를 지내며 영감과의 상봉을 빈다. 이윽고 영감과 할미를 만난다. 봉사가 작은어미의 순산을 위해 독경하니 옥동자가 순산된다. 할미가 아이를 안고 어르는데 작은어미가 시기하여 밀쳐 쓰러뜨린다. 할미가 즉사 한다. 이어 상두꾼이 나와 상여를 메고 출상한다.
- 기능보유자 : 이기숙 강영구 강연호
- 기능보유자후보 : 김옥련
- 전수보조자 : 구영옥 장경진 김홍종
- 이수자 : 신상택 김민종 김강녕 김대영 최한기 하영진 박기수 이정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