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김유신공(金庾信公)의 나이 15세때 화랑이 되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흡연(洽然)히 그에게 복종하였으며 또 낭도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렀다.
신라 진평왕(眞平王)28년(611)에 공의 나이 불과 17세였는데 북으로는 고구려(高句麗)와 말갈(靺鞨)이, 서로는 백제(白濟)가 국경을 침범하여 나라가 불안함을 보자 강개(慷慨)하여 적을 평정할 뜻을 깊이 품었다.
그래서 홀로 중악(中嶽)의 석굴에 들어가서 제계하고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기를「적국이 무도하여 이리와 범이 되어 우리 강역을 침요하여 거의 평안한 해가 없습니다.
나는 한낱 미약한 신하로서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뜻을 화(禍)와 난을 소청하는데 두고 있아오니 하늘은 내려보시고 나에게 능력을 빌려 주십시오.」하였다.
거기에 있은지 4일에 문득 한 노인이 굵은 배옷을 입고 와서 말하기를 「이곳에는 독충과 맹수가 많아 무서운 곳인데 귀 소년이 여기에 와서 혼자 거처하니 어쩐 일인가?」하였다.
이에 유신공이 대답하기를 「어른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존명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하니 노인이,「나는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인연을 따라 행동을 하는데 이름은 난승(難勝)이라 한다.」고 하였다.
공은 이 말을 듣자, 그 노인이 비상한 사람임을 알고 재배하여 나아가 「나는 신라 사람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근심이 되어 여기와서 만나는 바가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데 어른께서는 저의 정성을 애달피 여기시어 방술(方術)을 가르쳐 주시옵소서」하였다.
노인은 다만 잠잠하여 말이 없었다.
공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여 6, 7차까지 거듭하니 그제야 노인은 「그대는 아직 어린데 삼국을 병합할 마음을 가졌으니 장한일이 아닌가?」하고 이에 간직하였던 비법을 전하면서, 「조심해서 함부로 전하지 말라. 만일 불의한 일에 쓴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을 것이다.」하였다.
말을 마치고 작별을 하며 2리쯤 갔는데 쫓아가 바라보니 보이지 않고 오직 산위에 5색과 같은 찬란한 빛이 나타나 있을 뿐이었다.
이듬해인 진평왕(眞平王) 29년(612)에 이웃 적병이 박도하니 공은 더욱 비장한 마음을 격동하여 혼자서 보검을 들고 인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며, 마치 앞의 중악산(中嶽山)에서와 같이 기도하며 맹세하니 천관신(天官神)이 빛을 내리어 보검에 신령스러운 기운을 주었다.
3일 되는 밤에 허숙(虛宿)과 각숙(角宿)의 두 별이 뻗친 광채가 환하게 내려 닿으니 칼이 동요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 김유신공(金庾信公)은 일즉 화랑이 되어 나이 17세에 이미 중악(中嶽)에서 신수(神授)를 받았고 또 익년에 인박산(咽薄山)에서 천신으로부터 힘을 얻는 수련을 거쳐 마침내 3국의 통일이라고 하는 과업을 성취시키는 주역의 한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일은 천관신(天官神 : 道家의 三宮神의 하나. 즉 天宮,地宮, 水宮이 그것이다)으로부터 보검에 빛을 받았다는 인박산(咽薄山)이 어디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박산(咽薄山)이라 함은 「열밝산」을 뜻하는 것으로 열밝산의 이두식(吏讀式) 표기가 바로 "咽薄山"이다. 「열(咽)」이라 하는 것은 「환하게 열리다」라는 뜻이며, 「밝(薄)」은 바로 밝이니 명(明)을 말하며 환하게 열리고 밝은 산이라는 것이된다.
열밝산의 위치를 고찰하여 본다면 첫째 김유신(金庾信)장군이 기도하여 힘을 얻었다는 곳이 백운산(白雲山)으로 전해오며, 둘째로 두서면 미호리(斗西面 嵋湖里)에서 봉계(鳳溪)로 넘어가는 재(嶺)를 열박재(悅朴嶺)라 하고 있는 것 등을 미루어 본다면 지금의 백운산(白雲山)이 틀림없다.
백운산(白雲山)이라 함도 그 가지는 뜻은 밝다는 뜻이니 이두로 되었던 「咽薄」이 「白雲」이라는 한식명(漢式名)으로 변했을 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김유신(金庾信) 조를 보면 「入咽薄山深壑之中」이라 하여 열밝산의 깊은 구렁이에 들어가서 힘을 빌었던 것인데, 백운산(白雲山)의 901고지인 감투봉 바로 밑에는 「深壑」이라 할 수 있는 「구렁」이 있어 이곳을 김유신공(金庾信公)이 하늘과 산신에 기도하던 곳이라 전해온다.
감투봉에 오르면 서쪽으로 소호리(蘇湖里)가 발아래 아롱거리며 동남으로는 동해가 안개 속에 보인다.
또 이 봉우리의 밑에는 옛날 백운암(白雲庵)이라는 절이 있었다 한다.
백운산(白雲山)은 신라(新羅)때로부터 사람들이 받들어 오던 하나의 신령스러운 명산(名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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