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산 54
이 정려는 임진왜란 때 전란좌도수군 절도사 이순신 장군의 선봉으로 왜군과 싸우다 부산 몰운대에서 전사한 정운장군을 표창하기 위하여 선조 41년 명정에 의하여 그의 출생촌 입구에 건립된 것이다. 현재 정려 안에 걸려 있는 현판의 명정기록은 다음과 같다. 「충신 증가의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행절형장군첨지중추 부사정운지려 만력삼십육년시원일 명정」 위 기록에 의하면 선조 41년(1608)에 명정되어 건립되었다. 현 재의 건물은 1959년에 중수한 것으로서, 정운장군의 12대손인 정홍채의 중수기 현판이 충신각안에 걸려 있다. 정면, 측면 사 방 6척의 소형 건물이다. 정운장군은 조선조의 무신으로서 중종 38년(1543) 현재의 해 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훈련원참군 응정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자는 창진, 본관은 하동이다. 28세 때(선조 3년)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 웅천현감을 거쳐 제주 판관때 목사와 불화 하여 파직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녹도만호로 좌수영 앞 바다 싸움에서 전라돠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이 되어 대전과를 올리고, 다시 추격하다가 부산의 몰운대 싸움 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헌종 9년 (1843)에 충장의 시호가 하사되었다.
이 정려는 임진왜란 때 전란좌도수군 절도사 이순신 장군의 선봉으로 왜군과 싸우다 부산 몰운대에서 전사한 정운장군을 표창하기 위하여 선조 41년 명정에 의하여 그의 출생촌 입구에 건립된 것이다. 현재 정려 안에 걸려 있는 현판의 명정기록은 다음과 같다. 「충신 증가의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행절형장군첨지중추 부사정운지려 만력삼십육년시원일 명정」 위 기록에 의하면 선조 41년(1608)에 명정되어 건립되었다. 현 재의 건물은 1959년에 중수한 것으로서, 정운장군의 12대손인 정홍채의 중수기 현판이 충신각안에 걸려 있다. 정면, 측면 사 방 6척의 소형 건물이다. 정운장군은 조선조의 무신으로서 중종 38년(1543) 현재의 해 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훈련원참군 응정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자는 창진, 본관은 하동이다. 28세 때(선조 3년)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 웅천현감을 거쳐 제주 판관때 목사와 불화 하여 파직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녹도만호로 좌수영 앞 바다 싸움에서 전라돠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이 되어 대전과를 올리고, 다시 추격하다가 부산의 몰운대 싸움 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헌종 9년 (1843)에 충장의 시호가 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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