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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사비 - 정열사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나주시 대호동 642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익 장군을 추모하여, 그가 서거한지 34년후인 인조 4년(1626)에 나주 유림들이 공의 사주 '정열사'에 세운 것이다. 정열사는 나주의 인사들이 선조 39년(1606)에 나주 월정봉아래에 건립하여 동년 12월에 조정으로부터 정열사라 사액되어 창의사 김천익장군을 주벽으로 하고 김상간·양산숙·임회·이용제 등을 모시었으나 고종 5년 대동열철로 헐리고 1966년에 남산공원에 복원되었다가 다시 1982년 정열사가 정화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비는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사각방형의 이수를 올려 놓았으나 비신의 석질이 양호하지 못하고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해독이 곤란할 정도가 비제는 '정열사비'라 전각되어 있고, 비문의 찬자는 신풍군 장유이나 서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비문의 중심인물 창의사 김천익장군은 중종 32년(1537)에 나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의병장이며 삼장사의 한 사람이다. 자 는 사중, 호는 건재, 또는 극념당, 본관은 언양이고 유일로 천 거되어 선조 6년(1573) 군기사 주부가 되고, 선조 11년(1578) 임실현감을 지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조정으로부터 판결사의 벼슬과 창의사의호를 받고 많은 전공을 세 웠으며, 왜적이 남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자 적을 추격하여 진주성에 주둔, 절도사 최경회, 황진·고종후·장윤 등과 함께 사수를 다짐하였다가 마침내 성을 함락당하자 아들 상건과 남 감에 투신 자결하였다. 좌찬성에 추증, 문열의 시호를 받았다. 유자로 『건재유집』 『송천집』이 오늘날 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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