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57
가옥의 건축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대지가 2,318평, 건평만 188평이 되는 전라북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만석꾼 가옥이다.
안채와 사랑채 및 행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량문(上樑文)의 기록으로 보아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에, 동·서 행랑채는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래 한옥양식과 현대양식을 접목시킨 보기드문 형태의 이 가옥은 행랑채에 딸린 대문 안쪽으로 안과 밖을 차단하는 벽을 두어 집안 생활을 철저히 보호하는 등 구조의 면밀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이 집을 개방하지 않는 탓에 늘 굳게 닫혀있고 출입을 허락받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 가옥은 외국의 경우처럼 거실과 침실을 분리하여 사랑채 깊숙한 곳에 침실을 별도로 두었고, 외부에서 벽돌담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차단하였으나 내부는 문을 달아 복도와 통하도록 하였다. 또 사랑채 전후에는 복도를 둘렀으며 바깥쪽으로는 유리 분합문을 달아서 채광에 유의하기도 하였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며, 하부의 화강석은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약간 벌어지도록 사각으로 깎은 석조에 통발기둥을 세웠다. 또 전후면에는 정교한 亞자 난간을 둘렀다.
안채의 경우도 사랑채와 같이 배치하였는데, 장대석, 디딤돌, 주춧돌 등은 희고 매끄러운 화강석을 마치 기계로 절단한 것처럼 고르고 정확하게 다듬고 잘라낸 것을 사용하였다.
사랑채 측면에는 변소를 별도로 세우고 여기에 세면소를 부설하였으며 행랑채 끝에는 목욕탕을 두었다. 그리고 뒷 곡간의 정면에는 입구 부분으로 지붕을 이어내고 기둥을 따로 세운 다음 바닥에는 시멘트를 발라서 통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 말기의 양반가 형식 (兩班家形式)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대가이나 구조 및 의장(意匠) 등에 일본식의 수법이 가미되어 당시의 주택모양을 살필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