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북정동 698번지
양산 북정리 고분군(梁山北亭里古墳群)
양산의 고분군은 대체로 3군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제일 북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북정리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천성산(千聖山) 줄기 끝부분의 서쪽 경사면에 해당되며 소형분은 주로 산기슭쪽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대형분은 능선의 정상부분에 많이 있다. 얕은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신기리(新基里) 고분군이 인접해 있다. 이 고분들 가운데 1920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알려진 양산 부부총(梁山夫婦塚)은 동쪽 높은 곳에서부터 열번째의 고분이다. 동서 길이 5.4m, 남북 2.2m, 높이 2.5m의 장방형 석실인 이 부부총의 네벽은 내경(內傾)하고 바닥에는 남쪽에 남자, 북쪽에 여자를 각각 북침 (北枕)으로 나란히 눕혔고 입구쪽에는 주인 부부와 직각으로 남침(南枕)한 인골 3주가 누워 있었다. 부부는 남편이 목관없이 먼저 매장된 후에 석단(石檀)을 확대하고 부인이 매장 된 것이며 남편은 금동관, 각종 옥으로 된 경식(頸飾), 과대, 식이(飾履)를 착용하고 있어 고신라기의 귀족이나 지방의 토호(土豪)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1990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재조사되어 1991년에는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분들은 모두 횡구식 석실분(橫口式石室墳)임이 밝혀졌고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 보고된 부부총도 횡구식 석실분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금조총(金鳥塚)이라 명명된 고분에서는 금제조족(金製鳥足)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부부총과 금조총은 모두 평면 장방형의 횡구식 석실분이지만 부부총은 구릉의 정상 부에 위치한 대형분으로 석실 내부의 벽면과 천장은 백색으로 도장(塗裝)하는 등 매우 고 급스런 느낌을 주는데 비해 금조총은 구릉의 경사면에 위치한 소형분이다. 이처럼 입지조건과 형태가 다른 것은 피장자의 신분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아진다. 고분군의 입지조건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신라고분이 경주의 평지에 축조되어 있는데 반해 구릉의 정상부나 경사면에 분포하는 것은 가야의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양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金銅冠), 금동식이(金銅飾履)를 비롯한 금제이식(金製 耳飾), 금제천(金製釧), 금제과대(金製鍋帶), 삼루환두대도(三累環頭大刀) 등 화려한 유물의 특징은 경주지방의 대형 목곽분(木槨墳)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내용상 많이 닮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고분에 안치된 피장자는 신라의 중앙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자이거나 혹은 그 친족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추측된다. 부부총의 경우는 추가장으로 남편이 먼저 피장되면서 축조되었기에 남편은 5세기 중반 이후, 부인은 5세기 후반 그리고 금조총은 5 세기말이나 6세기초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경상남도, 1995, <<경남문화재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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