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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낙산리고분군 - 낙동강 동안구릉지대의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구미시 해평면 낙산1∼2리 98-4외

위치·분포< 位置·分布 >고분군< 古墳群 >은 행정구역 상 경상북도< 慶尙北道 > 선산군< 善山郡 > 해평면< 海平面 > 낙산리< 洛山里 > 98-4번지< 番地 > 일대< 一帶 >에 위치< 位置 >하나 낙동강< 洛東江 > 동안구릉지대< 東岸丘陵地帶 >의 광범위< 廣範圍 >한 지역< 地域 >에 분포< 分布 >하고 있으므로 다시 오목야고분군< 吳木野古墳群 >·중리고분군< 中里古墳群 >·불로산고분군< 不老山古墳群 >·월파정산고분군< 月波亭山古墳群 >·정묘산고분군< 鄭墓山古墳群 >·칠창동고분군< 七倉洞古墳群 > 등 소지역< 小地域 > 고분군< 古墳群 >으로 나누게 되며 지금까지의 지표조사결과< 地表調査結果 > 총205기< 總205基 >를 찾아냈다. 그리고 각고분군< 各古墳群 >의 고분< 古墳 >은 대체로 구릉< 丘陵 >의 정상부< 頂上部 >에서 경사면< 傾斜面 >을 따라 평야지대< 平野地帶 >를 향< 向 >하여 연주형< 連珠形 >을 이루고 분포< 分布 >하고 있다. 구조형식< 構造形式 >분구< 墳丘 >의 형태< 形態 >에는 반구상< 半球狀 >의 원형< 圓形 >과 표형< 瓢形 >(월파정산고분군제38호분< 月波亭山古墳群第38號墳 >)이 있고 분구< 墳丘 >는 고분부근< 古墳附近 > 또는 인근지역< 隣近地域 >에서 운반된 잔돌·사립 등이 섞인 황색< 黃色 >·적갈색점토 등을 쌓아 축성< 築成 >(월파정산고분군제22·28·32호분< 月波亭山古墳群第22·28·38號墳 > 등의 예< 例 >)하였으며 분구< 墳丘 >의 규모< 規模 >는 특대형< 特大形 >·대형< 大形 >·중형< 中形 >·소형< 小形 > 등으로 구분< 區分 >케 되는데 특대형< 特大形 >은 대체로 분구저경< 墳丘底徑 > 15∼18m·높이 4∼6m 정도, 대형< 大形 >은 저경< 底徑 > 10∼14m·높이 3∼4m 정도, 중형< 中形 >은 저경< 底徑 > 7∼9m·높이 1∼2m 정도, 소형< 小形 >은 저경< 底徑 > 7m 이하< 以下 >·높이 1m 이하< 以下 >이다. 내부구조< 內部構造 >에는 토광묘< 土壙墓 >·옹관묘< 甕棺墓 >·수혈식석곽< 竪穴式石槨 >·횡구식석실< 橫口式石室 > 등이 그간의 조사에서 알려졌는데 토광묘< 土壙墓 >에는 지표< 地表 >에 장방형토광< 長方形土壙 >을 판 것, 묘광< 墓壙 > 바닥에 납작납작한 냇돌을 깐 것, 묘광< 墓壙 > 바닥에 냇돌을 깔고 토광< 土壙 > 벽< 壁 >에 돌을 돌리고 그 사이에 목곽시설< 木槨施設 >을 한 것 등이고 옹관묘< 甕棺墓 >에는 합구식옹관묘< 合口式甕棺墓 >가 알려져 있다(낙산동 택지조성지역 고분군 제19호옹관묘). 수혈식석곽< 竪穴式石槨 >에는 단곽식< 單槨式 >과 주부곽식< 主副槨式 >이 있고 횡구식석실< 橫口式石室 > 중에는 평면< 平面 >이 장방형< 長方形 >이고 포갠돌로 구축< 構築 >한 좌우장벽< 左右長壁 >은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기울여지게 쌓고 그위에 장대형판석< 長大形板石 >을 올려 놓은 구조형식< 構造形式 >의 것이 있다(월파정산고분군제22호분< 月波亭山古墳群第22號墳 >). 출토유물< 出土遺物 >낙산리< 洛山里 > 고분군< 古墳群 >의 발굴조사< 發掘調査 >는 3차< 次 >에 걸쳐 시행< 施行 >되었으나 아직 총체적인 종합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아 그간에 알려진 것만 여기에 옮겨 놓으면토기< 土器 >… 고배< 高杯 >·단경호< 短頸壺 >·장경호< 長頸壺 >·발< 鉢 >·대부호< 臺附壺 >·노형토기< 爐形土器 >·대부발형기대< 臺附鉢形器臺 >·고배형기대< 高杯形器臺 >·광구배< 廣口杯 >·파배< 把杯 > 등. 철기… 철도자< 鐵刀子 >·철족< 鐵鏃 >·철모< 鐵모 >·철부< 鐵斧 >·철겸< 鐵鎌 >·환두대도< 環頭大刀 > 등장신구< 裝身具 >… 관편< 冠片 >·대금구< 帶金具 >·은지환< 銀指環 >·수정곡옥< 水晶曲玉 >·유리소옥< 瑠璃小玉 > 등이 있다. 추정년대< 推定年代 >발굴조사결과< 發掘調査結果 >에 따른 낙산리< 洛山里 > 고분군< 古墳群 >의 추정년대< 推定年代 >는 보고서< 報告書 >의 간행< 刊行 >이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 斷定 >하기는 어려우나 조사고분< 調査古墳 >에 의하면 3세기< 3世紀 >부터 7세기중반경< 7世紀中半頃 >까지로 추정< 推定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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