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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선생 적려유허비 - 조광조 선생이 귀양살이 하던 집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능주에 귀양왔던 조광조(1482∼1519) 선생이 귀양살이 하던 집을 적려(謫廬)라 하고 이를 추모코자 세운 것이 적려유허비이다.
총높이 295cm, 귀부높이 164cm, 폭 81cm, 두께 29cm, 이수의 높이는 71cm.

1986년에 강당(정면 5칸, 측면 2칸)과 영정각(影幀閣, 정면 3칸, 측면 1칸)을 건립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적려했던 촌가를 복원하여 적려유허비 주위를 정화하였다.

이 적려유허비는 능주목 당시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부도 형상만 다듬었다.
이수는 반원형인데 전면에는 쌍룡이 엉키어 있으며 배면(背面)에는 한 마리의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전서는 민유중이, 글씨는 송준길이 썼으며 현종 8년(1617) 4월에 건립하였다.

정암선생의 휘는 광조요, 자는 효직이며 한양 조씨의 문중에서 1482년에 태어났다. 김굉필에게서 수학, 뒷날 김종직의 대를 이어 사림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1510년에 진사 장원하고 1515년에 급제하여 벼슬길로는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면서 임금의 신임을 얻고 유교로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시키려 노력하였다.
중종 14년(1519)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동년 11월 기묘사화를 맞아 이곳 능성현으로 유배되었으며 12월 20일에 사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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