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266 외
강진현에 전라도 병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선초인 1517년(태 종 17)이다. 이것은 당시 남해안지방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그 전에 광주에 있던 것을 이곳 에 이설 한 것이다. 당시 강진현 관문으로부터 동북간 30리 지점(고군내면)에 위치한 본영은 세조대 진관체제가 확립된 직후 1466년(세조 12) 종2품간의 병마절도사영으로 강화도면 서전라도 56관의 육군을 총관하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병영으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게 되자 1599년(선조 32) 장흥으로 옮겼으나 5년 뒤에 다시 구지에 환설하였다. 1895년 폐영되기까지 영속직할은 고군내면, 열수면, 이지면, 암천면 4개면을 관장했던 본영에는 폐영 당시 민호 1,889호, 인구 5,973명이 거주하고있었다. 영성은 석축의 둘레 2,820척, 높이 18척, 여첩 302, 옹성 12, 포루 2, 호지 5, 우물 9개 및 2층루로 이뤄진 남문과 동문·북문 등의 시설이 있었고, 각 종 관사 및 누정은 한말까지 보전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모두 훼철되었다. 병영성은 평지에 축조된 평지성으로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상태이다. 부분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것은 병영초등학교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부분과 박삼옥 씨 주택(남성리 266) 뒷담장 부분이다. 성의 형태는 남북이 길고 동벽의 길이가 서벽에 비해 약간 짧은 부정형의 거형이다. 성곽의 내외부는 넓은 존경지이며, 서북쪽을는 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개천을 해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성돌로 쌓는 협축기법을 사용하였다. 내·외에 면해있는 성돌들은 대부분 자연석으로 바깥면을 다듬은 돌을 썼고, 여느 성과 마찬가기로 하부는 큰돌을 놓고 위로 올라가면서 보다 작은 돌들을 쌓아 올라가는 방법을 썼다. 또한 병영초등학교 옆의 성벽은 성벽의 폭이 2m이상이 될 정도로 넓게 안쪽까지 견실히 뒷채움하였으나 박삼옥씨택 부분의 성벽 중 일부는 외벽만을 쌓고 안쪽으로 흙을 쌓아 내탁하는 편축도 일부분 나타나고 있다.
강진현에 전라도 병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선초인 1517년(태 종 17)이다. 이것은 당시 남해안지방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그 전에 광주에 있던 것을 이곳 에 이설 한 것이다. 당시 강진현 관문으로부터 동북간 30리 지점(고군내면)에 위치한 본영은 세조대 진관체제가 확립된 직후 1466년(세조 12) 종2품간의 병마절도사영으로 강화도면 서전라도 56관의 육군을 총관하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병영으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게 되자 1599년(선조 32) 장흥으로 옮겼으나 5년 뒤에 다시 구지에 환설하였다. 1895년 폐영되기까지 영속직할은 고군내면, 열수면, 이지면, 암천면 4개면을 관장했던 본영에는 폐영 당시 민호 1,889호, 인구 5,973명이 거주하고있었다. 영성은 석축의 둘레 2,820척, 높이 18척, 여첩 302, 옹성 12, 포루 2, 호지 5, 우물 9개 및 2층루로 이뤄진 남문과 동문·북문 등의 시설이 있었고, 각 종 관사 및 누정은 한말까지 보전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모두 훼철되었다. 병영성은 평지에 축조된 평지성으로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상태이다. 부분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것은 병영초등학교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부분과 박삼옥 씨 주택(남성리 266) 뒷담장 부분이다. 성의 형태는 남북이 길고 동벽의 길이가 서벽에 비해 약간 짧은 부정형의 거형이다. 성곽의 내외부는 넓은 존경지이며, 서북쪽을는 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개천을 해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성돌로 쌓는 협축기법을 사용하였다. 내·외에 면해있는 성돌들은 대부분 자연석으로 바깥면을 다듬은 돌을 썼고, 여느 성과 마찬가기로 하부는 큰돌을 놓고 위로 올라가면서 보다 작은 돌들을 쌓아 올라가는 방법을 썼다. 또한 병영초등학교 옆의 성벽은 성벽의 폭이 2m이상이 될 정도로 넓게 안쪽까지 견실히 뒷채움하였으나 박삼옥씨택 부분의 성벽 중 일부는 외벽만을 쌓고 안쪽으로 흙을 쌓아 내탁하는 편축도 일부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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